부산시 동래구 개요
부산광역시 동래구는 동쪽으로 해운대, 서쪽으로 북구, 남쪽으로 연제구, 북쪽으로 금정구에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9°02'∼129°07', 북위 35°10'∼35°13'이며, 면적은 16.63㎢, 인구는 27만 2837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3개 행정동(9개 법정동)이 있으며, 구청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다.
부산시 동래구 역사
동래 지역은 1919년 부산 일대지역의 3·1운동의 중심지였으며,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이 매우 강했던 곳이다. 부산부가 설치되자 동래는 부산부의 속하였으며 1914년 군·면통폐합에 따라 이전 동래부 일부와 기장군을 합하여 동래군을 만들어 행정적으로 경상남도의 행정구역으로 편제되었다. 당시에는 1읍(동래읍) 11면(북면·남면·사상면·사하면·구포면·서면·기장면·철마면·정관면·일광면·장안면) 128리 7동으로 이루어졌다. 그 후 계속적으로 동래군 영역은 축소되었다. 이후 1936년에는 서면과 암남리, 1942년에는 동래읍의 전부와 사하면 등의 지역이 부산부로 편입되었다.
광복 후 부산부가 부산시로 개칭되었고, 1957년 1월부터 구제가 실시되어 부산시 동래구로 편제되었다. 그 후 직할시 승격 당시 34개 동이었으나 계속적으로 행정동이 증가하자, 1980년에는 일부지역이 해운대구로 분구되어 나갔다. 1988년에는 금정구가 분구되어 나갔고, 그리고 1995년 3월에는 연산동과 거제동이 연제구로 분구되었다.
과거 동래읍성이 있던 곳은 단독주택이 형성되었으며 온천동 일대에는 고급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다. 사직동과 안락동 일대는 신흥주택지역으로 개발되어 현재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동래 지역은 현재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고 도시산업도로가 이곳을 지나면서 부산의 부도심 역할을 하고 있다. 법정동으로는 수안(壽安)·낙민(樂民)·복천(福泉)·칠산(漆山)·명륜(明倫)·온천(溫泉)·사직(社稷)·안락(安樂)·명장(鳴藏) 등 9개 동이 있다.
부산시 동래구 인구(인구수)
동래구의 총 인구는 272,376명이고 세대수는 120,056세대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동래구 | 272,376 | 120,056 |
부산시 동래구 동면읍 인구(인구수)
동래구에서 온천제3동이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37,274명, 세대수는 17,451입니다. 두번째로는 수민동 인구가 많고 인구 31,215명, 세대수는 13,431입니다. 세번째는 명륜동으로 인구는 26,431, 세대수는 10,179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온천제3동 | 37,274 | 17,451 |
수민동 | 31,215 | 13,431 |
명륜동 | 26,431 | 10,179 |
안락제2동 | 26,088 | 10,953 |
사직제2동 | 25,304 | 8,854 |
온천제2동 | 24,490 | 9,771 |
온천제1동 | 23,890 | 13,052 |
사직제3동 | 17,007 | 7,594 |
명장제2동 | 14,057 | 6,510 |
안락제1동 | 13,979 | 6,836 |
명장제1동 | 13,657 | 6,238 |
사직제1동 | 10,261 | 4,753 |
복산동 | 8,723 | 4,434 |
부산시 동래구 인구(인구수) 그래프
부산시 동래구 인구(인구수) 추이
동래구 인구는 1966년 19만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1975년 이후 구가 이관, 분리승격되면서 1985년 80만명을 돌파했었고 1995년 다시 31만명이 되었습니다. 2023년 현재 27만명이 동래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산시 동래구 산업 및 교통
동래 지역의 공업은 소규모 업체를 중심으로 섬유·의류, 조립금속·기계, 화학·고무 등의 업종이 발달했으나, 기존 업체가 계속 다른 지역으로 이전함으로써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상업기능으로 온천시장·동래시장·안락시장은 주택가 인접 상가로 발달하고 있다. 온천동 일대는 온천장을 중심으로 위락·소비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허심청·동래관광호텔 등 온천욕 및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대중음식점과 유흥업소가 몰려있다. 온천동에는 롯데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이 있어 대형 소매업이 발달해 있다.
동래 지역은 조선시대 부산 일대 교역의 중심지였다. 지금 동래시장이 있는 자리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읍내장으로 매 2·7일 열리면서 좌수영장(5·10일), 부산장(4·9일), 독지장(1·6일), 하단장(5·10일)과 함께 동래 지역의 5일장 체계를 이루었다. 『임원경제지』를 통해서 거래되는 품목을 보면, 쌀, 콩, 메밀, 면포, 마포, 비단, 과어, 사어, 청어, 북어, 대구, 전복, 해삼, 김, 채소, 꿀, 유기, 자기 솥, 나무, 종이, 연죽, 돗자리, 소 등 곡물·직물·어류·식기·자리·종이·연죽류 등이 많이 거래되었다. 동래는 개항기부터 초량에 중심기능을 빼앗겼으나, 시장은 주변 농업지역에 서비스 기능을 제공하면서 꾸준히 존속할 수 있었다.
동래 지역의 교통은 지하철 1호선, 3호선, 4호선이 통과하며, 안락·동래·내성·미남 등의 교차로를 중심으로 중앙로를 비롯한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발달해 부산 교통의 요충지이다. 최근 산복도로가 개통되어 미남교차로와 금정구를 연결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관내를 흐르는 온천천에 여러 교량이 건설되어 있다.
동래구 수안동과 연제구 거제동을 잇는 세병교는 병기를 씻어서 거둔다는 뜻으로 전쟁이 끝나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이다. 다리이름은 동래성 남문의 익성 가운데 앞쪽 문이 세병문인 데서 유래한다. 오늘날의 세병교가 건설되기 전에는 광제교라는 돌다리가 있었다. 이섭교는 수안동에 있던 다리로 1694년(숙종 20)에 건설된 다리이다. 동래구 수안동에서 연제구 연산동으로 갈 때 건너야 하는 수영천에 놓인 다리로서 3개의 아치를 연결한 돌다리였다. 동래구 안락동과 해운대구 반여동 사이에 놓인 원동계는 길이는 98m로, 동래구-해운대를 잇는 충렬로 상의 중요한 교량으로서 옛날에는 여울다리 또는 시내그랑이라 불렀다. 이 다리의 북쪽에는 현재 도시고속도로 원동인터체인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에는 동해 남부선철도의 철교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부산시 동래구 관광
온천장을 비롯하여 관광유적이 풍부하다. 동래온천은 『고려사』 지리지 이후의 여러 사료에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동래부지』(1740)에서는 “열은 달걀을 익힐 만하고 병을 가진 자가 목욕을 하면 문득 낫고 신라시대에는 왕이 자주 행차했다. 벽돌 네 모서리에 구리기둥을 세웠는데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는 기록이 있다. 1766년(영조 42) 온정을 지키는 집과 대문을 세웠으며 이때 세워진 온정 개건비(부산시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4호)가 지금도 남아있다. 가까이 있는 용각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시영으로 온천수를 양수한 자리이다. 1992년 복원하였으며 음력 9월 9일에 용왕제례가 열리고 있다. 동래온천장이 온천으로서 본격적인 발전한 것은 1915년 부산진과 동래 사이 경편궤도가 설치되어 경편기차와 전차가 경편궤도를 겸용하고 부터이다. 그러나 그때의 전차는 동래가 종점이었는데 전차가 온천장까지 연장된 것은 1927년이었다. 현재 허심청, 녹천탕 등의 온천은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명소이다. 온천장 인근의 금강공원에는 금정산성 남문으로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어 등산객들과 시민들이 자주 이용한다.
동래의 전통음식으로는 동래파전이 있다. 동래파전은 해산물과 육지의 산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내고 있다. 육지 산물로는 조선파와 미나리로 이들이 가장 향취를 돋울 때는 겨울을 지나 새순이 땅내음을 풍길 때이다. 과거에 동래파전이 봄 한철만 성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해산물로는 굴, 홍합 등을 이용한다.
특산물로 동래 담뱃대와 유기가 있다. 동래지방에는 일찍부터 담뱃대를 만드는 수공업이 성행하여 부산지방의 주체적 수공업의 대종을 이루었다. 옛날에는 연관이란 이름으로 불린 담뱃대가 있었는데, 언제부터 생산되었는지는 확인하기는 어렵다. 조선시대 울산 병영에는 무기제작창이 있었고, 이를 중심으로 연관이 많이 생산되었는데, 이곳에서 동래지방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추정한다면 대략 150년 정도 됐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담뱃대와 함께 동래의 명물로 손꼽혔던 것은 유기이다. 백동으로 만든 수저와 밥그릇은 동래의 것이 가장 모양이 좋았으며, 유기에 색깔과 무늬를 넣는 정교한 세공은 전국에서도 유명하였다.
전통적으로 계승되던 춤으로 동래고무가 있다. 연원은 고려시대 교방청 여기들에 의해 추어지던 무고에 있다. 고려 충렬왕 때의 시중 이혼이 귀양살이를 하던 중, 바다에 떠내려 온 큰 뗏목으로 북을 만들어 치고,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춘 것에서 유래되었다. 1920년대에 권번이 창설되면서 광복 직후까지 전승되다가 중단되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해 1993년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관내에서는 매년 3월 3·1절 축제와 10월 동래 읍성 축제가 개최된다. 동래읍성 축제는 동래읍성 북문광장, 문화회관, 온천천 등 동래 일원에서 진행되며 동래부사행렬, 영화제, 동래성전투재현, 동래장터운영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천동에는 시립박물관 복천동분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야박물관 중 하나이다. 동래고분 일대의 발굴이 완료되어 1981년 사적 제273호로 지정 고시되면서 이곳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복천동고분 유물의 전시를 전시하여 향토사 인식의 교육장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시대상 유물은 1508점이다.
온천동의 금강공원 내에는 부산민속예술관이 있다. 동래의 전통민속예술의 발굴과 계승·보급을 위해 1976년에 개관하였다. 그 주요 민속예술에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인 동래야류와 부산시 무형문화재 지정 제3호인 동래학춤, 제4호인 동래지신밟기, 제10호인 동래고무, 제8호인 가야금산조들로써 부산민속예술보존회가 이곳에서 전수를 하고있다. 한편 온천동에는 세계해양생물전시관이 있다. 이 전시관에는 현재 약 85개국의 해양생물표본 2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관내에는 여러 식생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명륜동 동래향교 안의 명륜당 서쪽에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 18m, 가슴높이 둘레 3.1m, 수관 폭 약 11m에 이르며 수령은 25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낙민동의 낙민동 팽나무는 높이는 16m, 가슴높이 둘레 2.6m, 수관폭 약 20m, 수령은 2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안락동에 소재한 회화나무는 동래고등학교 뒷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17m에 가슴높이 둘레가 2.8m나 된다. 이 나무의 수관 폭은 약 15m에 이르며 수령은 25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스포츠 시설로는 사직동에 있는 사직종합운동장이 있다. 1985년 8월에 실내체육관이, 10월에는 야구장이 준공되었다. 1989년 3월에 실내수영장을 개장하였고, 그외 체조 경기장인 체조체육관, 유도, 역도, 검도 등을 할 수 있는 종합실내훈련장, 테니스장, 롤라스케이트장이 있다. 또한 명장동 마안산에는 시민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인생문고개에서 마안산 북쪽으로 난 산책에 따라 형성된 체육공원으로 시민들을 위한 운동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동래구의 대표적인 공원인 금강공원은 부산에서 가장 먼저 개장된 공원이다. 부산민속예술관, 세계해양생물전시관들과 역사유적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인근의 온천장, 금정산이 있어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공원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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