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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구별 인구

북구 인구수(BUSAN) - 2023년

by allinfo's today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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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북구 개요

동쪽으로는 금정구, 서쪽으로는 사상구, 남쪽으로는 부산진구, 북쪽으로는 김해시 대동면과 접해 있다. 동경 128°59'∼129°04', 북위 35°11'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39.36㎢, 인구는 31만 484명이다.(2015년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13개 행정동(5개 법정동)이 있다. 구청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2동에 있다.

 

 

부산북구청 대표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제6호 태풍 카눈 관련하여 17시 발표, 18시 이후 발효되는 특보상 부산은 강풍 및 호우주의보에서 태풍주의보로 변경되었습니다. 남쪽 해안을 중심으로 먼바다에는 태풍경보가, 연안과 육상에는

www.bsbukgu.go.kr

 

 

 


 

부산시 북구 역사

부산 서북부의 관문 역할을 하면서 김해·양산을 포함하는 광역도시권의 교통중심지로 남해고속도로가 제2낙동교를 통과하며, 구포대교와 경부선 철도의 구포역이 위치하면서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주택지구로는 만덕동·화명동·금곡동 등을 중심으로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특히 화명동과 금곡동은 대규모 택지조성과 더불어 서낙동강변의 신흥주거지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1963년 부산시로 편입되어 구포리는 구포동으로 변화되었고, 이후 구포읍과 사상면이 편입되어 각기 부산진구의 구포출장소와 사상출장소의 관할이 되었다.

1975년 부산진구의 구포·사상출장소를 통합해 시 직할 북부출장소가 되었으며, 1978년에 북구로 승격되었으며, 이때 편입한 김해군 대저읍·가락면·명지면 일원은 1983년 시 직할 강서출장소가 되었다.

1989년 강서출장소가 강서구로 승격, 분리되었다. 1995년에는 삼락동·모라동·덕포동·괘법동·감전동·주례동·학장동·엄궁동 등 과거 사상출장소 관할 지역이 사상구로 분리되었다. 법정동으로 구포(龜浦)·금곡(金谷)·화명(華明)·덕천(德川)·만덕(萬德) 등 5개 동이 있다.

 

 

 


 

부산시 북구 인구(인구수)

북구의 총 인구는 276,316명이고 세대수는 123,504세대입니다.

행정기관 총인구수 세대수
북구 276,316 123,504

 

부산시 북구 동면읍 인구(인구수)

북구에서 화명제1동이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40,356명, 세대수는 14,344입니다. 두번째로는 금곡동 인구가 많고 인구 36,223명, 세대수는 17,853입니다. 세번째는 화명제3동으로 인구는 28,713, 세대수는 10,746입니다.

행정기관 총인구수 세대수
화명제1동 40,356 14,344
금곡동 36,223 17,853
화명제3동 28,713 10,746
만덕제2동 26,898 11,170
구포제2동 24,127 11,599
구포제3동 18,687 9,125
만덕제3동 17,985 7,390
화명제2동 17,407 7,310
만덕제1동 16,529 7,143
구포제1동 15,776 8,154
덕천제1동 11,951 6,610
덕천제2동 11,381 6,529
덕천제3동 10,283 5,531

 

 

부산시 인구수 - 2023년

부산시 개요 동쪽은 동해, 서쪽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와 김해시, 남쪽은 다대만·부산만·수영만을 끼고 남해, 북쪽은 울산광역시 온양면·서생면, 경상남도 양산시, 김해시와 접하고 있다.

blog.allinfo.today

 

 

 

 

부산시 북구 인구(인구수) 그래프

 

부산시 북구 인구(인구수) 추이

북구 인구는 1980년 33만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인구가 처음으로 10만명 이하로 감소했고 이후에도 인구가 꾸준하게 감소했습니다. 2023년 현재 27만명이 북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산시 북구 산업 및 교통

농업은 낙동강 하천 부지에서 시설농업이 이루어진다. 이 하천 부지는 인공제방을 축조하면서 형성된 부지로 소유권은 부산시에 있다. 농민은 매년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농지를 경작한다. 토질이 매우 비옥하며, 금정 산맥의 산록에서 국지적으로 텃밭 농사가 이루어진다.

한편 사상공업단지가 발달해 있는 지역이 사상구로 분리되어 나감으로써, 종전의 공업단지지역이 주거지역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제조업체의 생산활동은 부진하다. 주요 업종은 신발, 화학·섬유, 철강·기계 등이며, 신발산업의 침체와 인력난 등으로 대부분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상업기능은 구포역와 덕천로터리 주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구포는 조선시대 낙동강 수운과 동래를 잇는 포구로 각종 산물이 집산되던 곳이었다. 지금도 구포 시장에는 3·8일에 김해·양산 일대의 보부상과 노점상·소비자들이 모여 정기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매달 3일과 8일에 열리는 장날이 되면, 노점상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은 주변 지역으로 확대된다. 5일장은 일출에서 일몰까지 열린다.

상인의 규모는 계절에 따라 꽤 차이가 있으나, 평균 1,500∼2,000명 정도 규모이다. 김해·양산·밀양·창원 등 경상도 상인뿐만 아니라 경북·전남 지역 상인 등 전국의 상인이 모인다. 주거래 품목은 농산물·수산물·해산물 등을 비롯하여 공산품, 일용품, 잡화 등이 중심이다.

구포장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1871년에 간행된 『영남읍지』이다. 이 읍지에 보면, 구포장은 3·8일장으로 읍내장(2·7일), 좌수영장(5·10일), 부산장(4·9일), 독지장(1·6일)과 함께 동래 지역의 5일장 체계를 이루고 있다. 구포는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기 이전까지는 물산의 중요한 집산지이며 교역지였다.

경부선 구포역, 구포대교, 남해고속도로 등에 진입로가 있는 북구는 부산 서북부의 관문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최근에는 지하철 2·3호선이 개통되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낙동강에 연해 있어 조선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가 여러 곳 있었다.

금곡동에 소재했던 동원나루터는 김해의 대동면과 상동면 사이를 오가는 뱃길의 선착장이자 멀리 남쪽으로 구포나루터까지도 수시로 나룻배가 오르내리기도 한 곳이다. 조선 세조 때 김해 생림면에 있던 수참이 이곳 나루터로 옮겨오자 동원나루는 왜인과 무역을 위한 요충지가 된 유서 깊은 나루터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곳에 있었던 수참은 일본인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일본어로 ‘시찌맨’이라 불리기도 했다.

덕천동에는 조선시대 교통 역원이었던 기찰이 있었다. 덕천동의 의성 아래 덕천천 물길이 낙동강으로 들어서는 자리를 옛날은 기찰이라 불렸다. 이곳 기찰은 왜인들이 왜관을 거치지 않고, 개항 후는 해관을 거치지 않고 낙동강 물길을 따라 배로써 밀무역을 하는 잠상을 단속한 수검소였다.

구포동에는 삼세조창이 있었다. 이곳에 조창이 생기게 된 것은 1682년으로, 당시는 남창이라 하였다. 이 구포의 삼세조창을 감동진 삼세조창 또는 감동진 조창이라고도 했다. ‘감동진’이란 구포나루터의 다른 이름이다.

낙동강에는 여러 대교가 건설되어 있다. 덕천동에 소재한 구포 낙동강교는 남해고속도로의 교량으로 1973년 개통되었다. 덕천동을 기점으로 시작하면서 구포 인터체인지가 건설되었다. 이 인터체인지는 남해안고속도로에 진입하는 3개의 육교로 구성되었다. 한 개의 육교는 낙동로와 연결되고, 두개의 육교는 만덕로와 연결된다. 길이 1355m로 건설 당시 단일 교량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일제강점기 세워진 구포다리는 1933년 3월 7일 준공되었다. 김해군 대저면 사덕리와 동래군 구포읍 구포리를 잇는 다리로, 당시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였기 때문에 낙동장교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부산시 북구 관광

금정산맥과 낙동강에 연해 있어 관광자원이 비교적 풍부하다. 만덕고갯길에서 산성 남문 쪽으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정상에 금정산성 남문이 나타난다. 이곳 남문 아래에 있는 음식점 단지가 만덕촌이다. 이곳에 상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산성 동문으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나 있어 금정산을 종주할 수 있는 기점이 되고 있다.

애기소의 전설이 깃든 화명동의 대천 냇물은 여름이면 계곡 전체가 인파로 덮이는 곳이다. 계곡 상류에는 금정산성 서문이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있고 양쪽으로 연결된 성터의 유적은 청소년의 문화유적탐사 학습장으로서도 좋은 관광자원이다.

낙동강에 연해 있어 먹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구포는 봄에 딸기, 가을의 구포 배로 유명하였다. 이 지역일대의 배는 일제가 낙동강의 둑을 조성하여 농경지로 형성하면서 배나무를 심은 데서 비롯되었고 인근의 삼락동 역시 제방의 건설과 함께 비옥한 농경지로 바뀌면서 딸기 재배가 이루어졌다. 대동면과 대저동에서 재배된 배와 딸기는 구포선창에서 배로 실려 일본으로 갔고, 구포에서 경부선, 경의선 기차를 통해 만주까지 갔다.

구포에는 구포국수로 유명하다. 제분공장과 국수공장이 있었으며 6·25전쟁으로 피난민이 많이 모여들면서 구포시장에는 국수를 널어 말리는 곳이 많아졌다. 이 국수를 영세 행상인들이 기차로 부산에 공급하고 또 삼랑진·마산 등지로도 공급하여 생계를 이어 나갔다. 1960년대부터 대기업의 대량생산으로 구포국수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지금도 구포에 2∼3곳의 국수 공장이 남아 있으며 외지에서도 구포국수의 이름을 빌려 생산을 하고 있다.

구포동에는 광복 이후 구포선창 지역에서 가건물을 짓고 거북촌이라 하여 잉어회와 장어구이를 팔던 요리집이 즐비했으나 1970년대에 철거되었고, 현재 금곡동 동원 마을의 장어구이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장어마을’로 지칭되고 있는 이곳에는 20가구 중 16가구가 요리점을 경영하고 있으며, 부산의 7진미 중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북구의 주요 축제로는 ‘낙동 민속달맞이 행사’, ‘구포장터 만세재현 축제’, ‘낙동 민속예술제’ 등이 열린다. ‘낙동 민속달맞이 행사’는 낙동문화원 주관으로 매년 정월대보름 하루 동안 열리며 전통 세시풍속을 재현한다. 축제 내용으로는 당산제, 길놀이, 정월민속놀이, 구포대리지신밟기, 풍물한마당, 영남사물놀이, 판소리, 낙동두들소리와, 월령기원제, 달집태우기, 다리밟기, 쥐불놀이, 대동놀이 한마당 등이 있다.

매년 3월 18일에는 ‘구포장터 만세재현 축제’가 개최된다.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음력 2월 28일) 구포장날 농민·상인·노동자로 구성된 20∼30대 1,200여 명의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일제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매년 10월에는 ‘낙동 민속예술제’가 개최된다. 축제의 주요 내용으로는 민속경기로서 동대항 줄다리기, 줄넘기, 씨름대회, 제기차기, 세끼꼬기, 팔씨름 등과 민속경연으로 동대항 풍물경연대회, 전통무용경연, 민요경창대회 등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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