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부평구 개요
동쪽으로는 경기도 부천시, 서쪽으로는 서구, 남쪽으로는 남동구 및 경기도 시흥시, 북쪽으로는 계양구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41′∼126°46′, 북위 37°27′∼37°31′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32.00㎢, 인구는 55만 584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2개 행정동(9개 법정동)이 있다. 구청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에 위치해 있다.
인천시 부평구 역사
1967년 인천시는 시 기구의 확대와 시 구역의 확장 그리고 도시계획 등의 발전적 확대과정을 거치면서 ‘구제(區制)’를 실시하게 되었다. 1968년 1월 1일자로 시행된 ‘인천시구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천시 관내의 모든 출장소가 폐지되고 중구, 남구, 동구, 북구 등 4개 구가 신설되었다. 이때 부평 지역은 인천시 북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7년에 이르면 인천은 서해안 시대의 주역을 자처하며 국제항으로 발전하였다. 이때 북구는 대통령령으로 북구와 서구로 분구되었다. 이 조치에 따라 북구의 관할 구역은 1출장소, 29개 법정동에서 옛 부평출장소 지역이었던 19개 법정동만을 관할하도록 축소되었다. 1989년에는 옛 부평 지역이었던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이 북구로 편입되었으며, 구조례(區條例)에 따라 계양동이 설치되어 부평지역은 재차 확장되었다.
1988년에는 북구 조례에 따라 계양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그 이후 계양 출장소를 중심으로 관할 동이 증설되어 1992년까지 모두 29개 행정동과 32개 법정동을 갖추게 되었다.
1995년에는 법률 제4789호에 의거 인천직할시가 강화군과 옹진군을 포함하고, 인천광역시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일 인천광역시 북구는 경인고속도로를 기준으로 그 남쪽의 부평구와 북쪽의 계양구로 행정구역이 분할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인천시 부평구 인구(인구수)
부평구의 총 인구는 488,696명이고 세대수는 220,018세대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부평구 | 488,696 | 220,018 |
인천시 부평구 동면읍 인구(인구수)
부평구에서 부평4동이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35,334명, 세대수는 18,350입니다. 두번째로는 부평1동 인구가 많고 인구 35,100명, 세대수는 16,618입니다. 세번째는 청천2동으로 인구는 34,191, 세대수는 14,542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부평4동 | 35,334 | 18,350 |
부평1동 | 35,100 | 16,618 |
청천2동 | 34,191 | 14,542 |
부평5동 | 33,453 | 16,377 |
삼산1동 | 33,038 | 14,359 |
산곡2동 | 29,912 | 10,804 |
부개3동 | 28,980 | 12,183 |
삼산2동 | 27,868 | 10,230 |
십정1동 | 24,574 | 11,268 |
십정2동 | 21,627 | 11,333 |
산곡3동 | 20,832 | 8,686 |
부개2동 | 19,339 | 8,336 |
갈산2동 | 17,830 | 8,133 |
산곡4동 | 16,867 | 6,551 |
부개1동 | 16,143 | 7,945 |
갈산1동 | 15,795 | 7,268 |
산곡1동 | 14,986 | 6,603 |
부평6동 | 14,895 | 7,396 |
부평2동 | 14,885 | 7,402 |
부평3동 | 14,616 | 7,254 |
일신동 | 11,862 | 5,065 |
청천1동 | 6,569 | 3,315 |
인천시 부평구 인구(인구수) 그래프
인천시 부평구 인구(인구수) 추이
부평구 인구는 1970년 14만 9천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 인구가 처음으로 60만명을 돌파했고 이후에 인구가 조금씩 감소했습니다. 2023년 현재 48만명이 부평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인천시 부평구 산업 및 교통
인천의 시가지 개발은 개항 이후 일제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본격적인 개발 사업은 1937년부터 「조선 시가지 계획령」에 의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면서 추진되었다.
부평 지역의 시가지는 1941년에 소화지구(현재의 부평동 일대)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현재의 부평1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육군 조병창이 들어선 군수기지였다. 조선총독부는 조병창의 배후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부평역 앞 일대에 시가지를 조성하였다.
광복 이후에도 이 조병창 기지에는 미군 부대가 들어서 부평의 경제에 호경기를 제공해 주었다. 오늘날에는 미군 기지가 대폭 축소되고 나머지 토지는 모두 불하되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부평 지역의 산업은 경인고속국도 남쪽에 자리 잡은 수출 4공단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수출 4공단은 1969년 8월 19일부터 입주업체들이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이 공단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병참 기지로 개발된 기반 위에서 경인 축선상의 유리한 입지 조건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어서 1973년 7월 1일에는 주안에 제5공단을, 1974년 11월 5일에는 주안에 제6공단을 건설하였다.
수출 4공단에서 빠뜨릴 수 없는 회사가 대우자동차 공장이다. 1962년 부평 수출 4공단 남쪽에는 새나라자동차 조립 공장이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일본의 닛산[日産] 자동차 회사가 공급하는 부품 조립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외환 사정의 악화로 중단되었다가, 1965년 9월 신진자동차회사가 인수하면서 일본의 도요타[豊田]자동차 회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부품을 수입하여 자동차를 조립생산하게 되었다. 그 후 1972년 일본과의 기술 제휴를 끊고 미국 GM 회사와 합작 투자하여 GMK를 설립하였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이 회사는 대우실업에 인수되면서 새한자동차로 상호를 바꾸었고, 오늘날 대우자동차로 개칭되었다. 미국의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가 인수하면서 2003년 GM대우로 개칭되었다.
부평의 교통로를 언급함에 있어 전통 시대의 경인운하 굴착 시도를 빠뜨릴 수 없다. 경인운하는 일명 ‘굴포운하’라고도 하며, 조세선이 자주 난파되었던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손돌목을 피하기 위한 대안 교통로로 조선시대에 착수된 것이었다.
경인운하는 한강 쪽에서 굴착하기 시작하여 굴포천을 경유, 원통현(부평에서 남동구 간석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을 통과하여 인천 앞 바다에 이르는 것으로 계획되었었다. 그러나 『정조실록』 권47 정조 21년 8월 병인(丙寅) 조에는 “원통현까지 이르렀으나 개착에 실패하여 공사를 중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원통현의 개착 실패에 대해서는 기술상의 어려움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고, 풍수지리설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다만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 볼 때 원통현을 착파한다는 것은 커다란 난관이었을 것임에 틀림없고, 또한 막대한 노역과 경비가 소요되는 공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원통현을 “만년 공호(拱護)해야 할 땅”이라 하면서 “어찌 인력으로 착파할 수 있겠느냐”라고 한 것은 풍수지리적인 관념에서 해석한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굴포운하의 개통에 실패함으로써 손돌목이라는 조운의 난관은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새로이 제기된 방안이 전조창(轉漕倉)의 설치였다. 『부평부읍지』에는 “전조창이 서곶면 포리에 위치하는데 삼남의 전세와 대동미를 이 곳에 납입하였다가 서울 각사(各司)의 요미(料米)로 반급(頒給)하였다. 당시의 전운당상(轉運堂上)이 정병하(鄭秉夏)였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즉 삼남의 조세선이 손돌목까지 이르지 않고 이곳 전조창에까지 와서 세곡을 하역한 후 다시 육로를 통해 한양까지 수송하기 위해 설치했던 창고였던 것이다. 그러나 전조창의 설치 연대나 폐지 연대는 알 수가 없다.
오늘날 부평 지역의 주요 교통로는 경인전철, 인천지하철 1호선, 서울지하철 7호선, 경인고속국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등이다. 경인전철은 서울과 인천을 잇는 한국 최초의 철도로 1899년 제물포와 노량진 사이 33.2㎞로 개통된 이후, 1974년 8월 15일 수도권전철화계획의 일환으로 전철화되었다. 경인선은 인천의 공업 발전과 운송 체계에 있어 중추적 기능을 맡고 있다.
부평구 관내에는 부개역, 부평역, 백운역, 동암역을 두고 있다. 인천지하철 1호선은 1993년 7월 5일 착공되어 1999년 12월 7일 박촌역∼귤현역 구간인 24.6㎞가 개통되었다. 인천지하철 1호선은 인천교통공사에서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부평구 관내에는 부평삼거리역, 동수역, 부평역, 부평시장역, 부평구청역, 갈산역을 두고 있다.
서울지하철 7호선은 2000년 8월 1일 서울 장암역∼부천의 온수역 간 46.9㎞ 구간을 개통하였으며, 2012년 10월 온수역에서 부천을 거쳐 인천지하철 1호선의 환승역인 부평구청역을 잇는 10.2㎞ 구간을 연장하여 개통하였다. 부평구 관내에는 부평구청역, 굴포천역, 삼산체육관역이 있다.
한편 인천 남구 용현동에서 서울시 양천구 신월동에 이르는 경인고속도로는 길이 23.9㎞, 왕복 6∼8차선 고속도로로 서울과 인천 사이의 급증하는 수송 수요에 대비하여 1968년 12월 21일 준공 개통된 한국 최초의 고속도로이다. 부평구 진입은 부평 IC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중동 IC에서 진입할 수 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경기도 일산∼퇴계원∼판교∼산을 원형으로 연결하는 길이 91.25㎞, 왕복 4∼8차선 도속도로이며,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신도시 건설에 따른 교통난 해소를 위해 건설되었다. 부평구 진입은 중동 IC와 구산동 IC등 2곳에서 진출입할 수 있다.
부평구 관내의 도로는 경인국도, 원통로, 천마로 등 3개 노선이 인접 지역과 연결되는 주요 간선이며, 남북 방향의 도로로는 계양구와 연결되는 부흥로, 부평로, 청천로, 백마로 등의 5개 노선이 있다. 이 외에 인천의 항만과 서울권을 연결하는 경인전철(동암, 백운, 간석, 부평역)이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다.
한편 부평 지역에 조성된 지선 도로들은 대부분 간선 도로와 수직으로 교차하는 패턴으로 뻗어나가 있는데, 여기에는 신촌로, 공병로, 삼산로, 갈월로 등이 포함된다.
오늘날 부평구는 상업, 공업, 주택, 농촌 지역이 공존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수출 4공단의 공업지역과 구획정리된 주택지가 있으며, 변두리에는 농경지와 임야 지역이 아직 남아 있다. 주거 지역은 부평과 백마지구(산곡동, 청천동), 상업지역은 부평동과 부개동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공업지구는 1967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갈산동, 청천동, 산곡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인천시 부평구 관광
주요 관광 자원으로는 부평풍물대축제, 신년음악회, 문화의 거리 등이 있다. 부평풍물대축제는 예부터 인천 지역과 문화권을 달리하여 발전해 온 부평의 평야를 중심으로 형성된 농경문화를 상징한다. 이 행사는 매년 5월에 실시되며 부평공원을 비롯한 일대에서 전개된다. 개막축하 음악회를 시작으로 풍물콘서트, 문화행사 등 다양한 행사와 전통문화가 재현되며, 내용과 대규모 행사로 인천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평신년음악회는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연초에 오케스트라 협연, 성악, 부평여성합창단 공연 등 음악회를 개최함으로써 구민화합의 자리 마련과 지역공동체 조성 등 ‘풍요로운 문화부평’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매년 1월 개최되고 있다.
이 외에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된 ‘문화의 거리’는 각종 공연과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특히 청소년의 정서순화와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봄부터 가을까지 약 8개월 동안 청소년 라이브 행사가 상시 공연되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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