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 개요
동쪽과 남쪽은 영산호(榮山湖)에 면해 영암군을 마주하고 있으며, 서쪽은 많은 도서들로 이루어진 신안군, 북쪽은 무안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17'∼126°26', 북위 34°44'∼34°49'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50.65㎢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3개 행정동(64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은 전라남도 목포시 용당동에 있다.
목포시 역사
1932년무안군의 이로면지역을 병합했으며, 당시의 인구는 6만으로 전국 6대 도시의 하나로 급성장하였다.
1948년 일본식으로 된 지명을 우리나라 지명으로 고쳤다. 특히, 목포는 개항 후 일본인의 거류지로 지정되고 발전했던 만큼, 대부분의 동 명칭이 일본식 정명으로 되어 있었다. 1949년 지방자치법의 시행에 따라 목포시로 개칭되고 1952년 시의회를 구성하였다.
1963년에 무안군 이로면 산정리·상리·용당리·달리·눌도리가 목포시에 편입되고, 1970년에 산정1동에서 연동이 분동되었다. 1973년에는 무안군 삼향면 석현리가 목포시 이로동에 편입되었다. 1979년에는 용당동이 1, 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7년에 무안군 삼향면 대양리·옥암리가 목포시에 편입되었다. 이때 석현동 일부와 대양동·옥암동을 합해 삼향동이 설치되었고, 1994년에는 이로동이 용해동·상동으로 분동되었다. 1997년에는 29개 행정동을 26개로 정리하였다.
또한, 삼학도와 갓바위를 잇는 지역을 매립하는 등, 현재 전시역의 3분의 2가 매립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립작업에 의한 시역의 팽창이 계속되어 왔다.
목포시 인구
목포시의 총 인구는 213,376 명이고 세대수는 104,633 세대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전라남도 목포시 | 213,376 | 104,633 |
목포시 동면읍 인구
목포시에서 부주동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22,544 명, 세대수는 9,555 입니다. 두번째로는 상동 인구가 많고 인구 21,834 명, 세대수는 10,075 입니다. 세번째는 용해동으로 인구는 16,297 명, 세대수는 7,478 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부주동 | 22,544 | 9,555 |
상동 | 21,834 | 10,075 |
용해동 | 16,297 | 7,478 |
신흥동 | 16,022 | 7,480 |
하당동 | 14,096 | 7,736 |
원산동 | 11,839 | 5,947 |
옥암동 | 10,834 | 4,531 |
연산동 | 10,279 | 4,193 |
이로동 | 10,228 | 4,309 |
용당1동 | 9,593 | 5,515 |
산정동 | 9,052 | 4,082 |
북항동 | 8,662 | 4,267 |
부흥동 | 8,117 | 4,132 |
목원동 | 6,575 | 4,014 |
삼학동 | 5,632 | 2,677 |
대성동 | 4,800 | 2,437 |
동명동 | 4,733 | 2,736 |
용당2동 | 4,619 | 2,763 |
삼향동 | 4,469 | 2,286 |
연동 | 4,060 | 2,551 |
유달동 | 3,885 | 2,554 |
죽교동 | 2,778 | 1,706 |
만호동 | 2,428 | 1,609 |
목포시 인구 그래프
목포시 인구 추이
목포시 인구는 1949년 11만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 처음으로 20만명을 돌파했고 이후 인구가 크게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2024년 현재 21만명이 목포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목포시 산업 및 교통
조선 말기까지도 무안현에 딸린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1897년 개항된 이래 식민지 거점도시로 이용되면서 급속히 성장한 항구도시이다. 1914년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었고 호남에서 생산되는 쌀·목화·누에고치 등이 이곳에 집산되어 일본 고베[神戶] 항으로 실려 갔으며, 일본에서 가공된 물자는 여기서 하역되어 철도를 타고 내륙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런 과정으로 일제강점기에 목포는 광주보다 훨씬 번성한 도시였다.
8·15광복 이전까지 쌀과 목화의 수출항으로 큰 몫을 했던 만큼 공업은 정미·조면(繰綿)·양조·면실유(棉實油)·유지(油脂) 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현재는 청주(淸酒)와 주정(酒精)을 만드는 양조업과 도자기·유리공업 등이 성행하며, 고무·선구(船具)·어구(漁具) 공업 등이 활발하다.
도자기와 유리의 원료는 대부분이 다도해에서 나는 고령토와 규사를 사용하며 목포시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도자기업체인 행남사(杏南社)와 양조업체 보해(寶海)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다. 1970년대 목포공단을 유치하는 등 제조업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나 11년이나 걸려 분양을 완료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도시로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빈약한데 2004년 현재까지 종업원수 및 생산액은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농업은 쌀·보리 생산 외에 동목포 부근에서 무·배추·딸기·수박 등의 고등소채와 과수재배가 행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양계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항구의 특성상 수산업이 발달해 어가인구는 2008년 현재 농가인구의 1.5배인 4,577명에 달한다.
수산물 어획고도 계속 증가추세에 있으며, 매년 수산물 계통 판매고만도 5만여 톤, 1억 원에 달한다. 통조림이나 원형동결, 조미가공 등 수산물 가공업도 2만여 톤을 넘는다. 연안의 넓은 간석지를 이용한 굴 및 대합 등의 양식업도 활발하며, 곳곳의 염전에서는 천일염을 생산한다.
상업 활동은 조선 말기까지만 해도 무안현의 작은 항구에 지나지 않아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거점 항구도시로 발전하면서 그 상세(商勢)가 전국적으로 신장되었다. 1920년에 들어선 2개의 매일시장은 곡물시장과 어물시장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과 함께 다른 지역이 크게 발전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위축된 편이다. 목포항은 항구로서의 자연조건이나 입지조건에서 제약이 있기 때문에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상세가 크게 둔화된 것이다. 또한, 육상교통의 발달로 과거 목포와의 상거래선이었던 완도·진도·장흥·강진·해남 등이 광주권에 편입됨으로써 더욱 축소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신안군과 해남군 등의 다도해를 잇는 연안 항로의 중심지로서 제주도를 비롯하여 인근 165개 섬에 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목포는 호남선의 종점이며 국도 1호의 기점이기도 하다. 광주∼목포간 고속화도로가 4차선으로 확·포장되어 광주와 1시간 거리권이 되었다. 목포와 서울을 서해안을 통해 연결하는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한때 목포비행장이 개설되어 목포∼서울 및 목포∼제주간 항공기가 취항했으나 1970년대 초 석유파동을 계기로 휴항한 이래 폐쇄되었다가 1992년부터 취항이 재개되었다. 2007년 11월 무안국제공항이 개장하면서 목포비행장은 폐쇄되었다.
서남해 도서를 연결하는 연안항로의 기항지로서 그 역할이 중요하며, 요즈음은 인근에 새로운 대불공업단지(大佛工業團地)가 건설되고 있다. 이 공업단지가 완성되면 서남해 무역단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자못 기대된다.
목포시 관광
목포시는 홍도·흑산도 등 다도해와 내륙의 관광지를 연결해주는 요충지의 성격을 띤 곳으로, 수려한 해상경관과 많은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다. 병풍을 둘러놓은 듯 기암절벽이 특이하게 펼쳐진 경승지 유달산은 순환도로·등산로의 개설과 종합적인 공원화사업으로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산중턱에 개설된 순환도로에서는 시가지와 영산호·고하도·갓바위는 물론 다도해까지 조망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 조각공원(彫刻公園)에는 100여 점의 수준급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최초의 난전시실에는 전국 각지에 자생하는 한국난 39종을 비롯해 288종의 난이 전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난의 배양과 재배에도 성공하여 저렴한 가격에 육종 분양하고 있다. 유달산 각 골짜기의 분지에는 유달공원·달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20여 종의 운동기구를 설비한 체육공원도 있다.
목포 시내를 지나 남동해안 쪽으로 가면 용해동에 삼학도와 갓바위가 있는데 삼학도는 방파제 공사의 완공으로 육지화되었다. 갓바위 부근에는 수석과 서화를 함께 전시한 향토문화관과 남농기념관이 있다. 여기에는 남종화를 우리나라 화단에 정착시킨 소치(小癡) 허련(許鍊), 미산(米山) 허형(許瀅), 남농(南農) 허건(許楗) 등 3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남농기념관 건너편에는 신안유물을 전시한 해양유물전시관이 있다.
갓바위를 지나면 하구언 공사로 생긴 영산호가 있다. 영산호는 동양 최대의 호수로 방조제의 길이만도 4.3㎞에 달한다. 영산호의 조성은 자체의 관광객 유치 효과뿐만 아니라 영암을 비롯한 7개 군과의 해상운송을 육상운송으로 바꾸어 다른 군과의 연계관광을 보다 용이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하구둑을 막 지나면 전남농업박물관이 있다. 만호동에는 조선 초기 수군의 진영이었던 목포대가 있고, 북서해안에는 톱머리·유달 해수욕장이 있다. 유달산·고하도·갓바위·영산호 등지에는 관광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1981년 다도해지역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다도해상의 항구도시로서 관광시설을 더욱 확충하고, 영산호 주변을 관광단지로 조성하는 등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특히 목포 앞바다에서 6㎞ 떨어진 외달도는 해변의 정경이 아름답고 오염되지 않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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