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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광역시 및 도별 인구

서울시 인구수 - 2023년

by allinfo's today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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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개요

한반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며, 대한민국의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이다. 동쪽은 경기도 남양주시·구리시·하남시, 서쪽은 경기도 고양시·김포시·부천시, 남쪽은 경기도 성남시·과천시·안양시·광명시, 북쪽은 경기도 의정부시·양주시에 접해 있다. 위치는 동경 126°45'∼127°11', 북위 37°25'∼37°41'이다. 면적은 605.21㎢이고, 인구는 1002만 2181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5개 구, 423개 행정동(467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은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에 있다.

 

 

서울특별시 -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의 주요뉴스, 시민참여, 주요서비스, 자주찾은서비스, 시장실, 분야별정보, 새소식등의 정보제공

www.seoul.go.kr

 

 

 


 

서울시 역사

서울이라는 명칭은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보이는 서벌(徐伐)·서나벌(徐那伐)·서라벌(徐羅伐)·서야벌(徐耶伐) 등에서 비롯되어 변천된 것으로, 이러한 칭호는 신라 초기 도읍지의 지명인 동시에 국명이기도 하였다.

 

『삼국지』 등 중국 사서에 보이는 사로(斯盧)·사라(斯羅)·신로(新盧) 등의 국명도 ‘서울’과 같은 음훈(音訓)으로, 서벌·서라벌 등의 다른 표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백제의 도읍을 소부리(所夫里)라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서울’의 본래의 뜻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설(異說)이 있지만, 서(徐)·서나(徐那)·서라(徐羅)는 높고[高] 신령(神靈)하다는 우리말 ‘수리’·‘솔’·‘솟’의 음사(音寫)이고, 벌(伐)은 들판을 의미하는 우리말 ‘벌’의 음사이다. 따라서 ‘서울’, 즉 서벌·서나벌·서라벌은 상읍(上邑) 또는 수도(首都)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 인구

서울시의 총 인구는 9,418,885명이고 세대수는 4,467,999세대입니다.

행정기관 총인구수 세대수
서울특별시 9,418,885 4,467,999

 

서울시 구별 인구

서울시에서 송파구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657,260명, 세대수는 285,615입니다. 두번째로는 강서구 인구가 많고 인구 567,237명, 세대수는 274,425입니다. 세번째는 강남구로 인구는 535,744, 세대수는 236,296입니다.

행정기관 총인구수 세대수
송파구 657,260 285,615
강서구 567,237 274,425
강남구 535,744 236,296
노원구 501,237 218,187
관악구 487,462 286,538
은평구 463,612 213,830
강동구 459,275 202,725
양천구 438,641 181,169
성북구 429,689 197,906
서초구 404,436 168,344
구로구 394,973 184,498
중랑구 384,650 188,020
동작구 380,594 186,980
영등포구 376,347 190,437
마포구 365,283 181,093
동대문구 337,680 171,388
광진구 336,580 169,950
도봉구 309,622 138,289
서대문구 308,208 147,197
강북구 291,959 144,577
성동구 279,760 133,551
금천구 229,251 120,423
용산구 217,438 109,717
종로구 140,601 72,584
중구 121,346 64,260

 

 

대한민국 인구 - 2023년

대한민국 개요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동아시아 한반도에 위치한 민주공화국이다. 약칭 '한국(韓國)' 또는 '대한(大韓)'.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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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인구 그래프

 

서울시 인구 추이

서울시 인구는 1950년 169만명이었으나 그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구가 큰폭으로 증가했습니다. 1990년 처음으로  인구 1000만명을 돌파했고 1990년에는 1060만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했습니다. 그 이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3년 현재 941만명이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인구가 감소한 이유는 2000년 이후로 집값이 크게 증가하여 인근 수도권으로 인구가 분산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울시 산업

서울은 1394년 조선의 수도로서 건립된 이후 600여 년간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개항과 더불어 신문명의 도입에 따른 사회·경제적인 변화는 전산업형 도시에서 산업형 도시, 그리고 다핵심도시로의 변환을 유도하였다. 특히 경제발달과 함께 이루어진 인구의 급증은 서울을 거대도시로 발전시켰으며,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도시화는 주변의 위성도시들과 더불어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수위도시로서 우리나라 도시의 외형적·내형적 발달에 주요한 일익을 담당했으며, 산업과 교통의 발달에도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도시의 특징은 산업과 교통의 발달을 고찰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산업별 취업인구는 1차산업인 농·임·어업에 18개 사업체, 2차산업인 광업 및 제조업에 5만 8573개 사업체, 3차산업인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에 38만 4909개 사업체가 있어 3차산업이 두드러진 도시임을 입증해 준다.

 

이를 1990년의 통계와 비교하면, 1·2차산업은 각각 0.1%와 8.3%가 감소한 반면 3차산업은 8.4%가 증가해 산업구조가 3차산업인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 위주로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전국적인 현황과 비교하면 서울의 산업 특징이 더욱 잘 나타나는데, 광업 및 제조업의 경우는 비슷한 구성비를 보이나 농·임·어업은 현격히 낮으며 3차산업의 경우는 전국적인 현황보다 높아, 3차산업 주도형 도시로서의 특징이 뚜렷하다. 이러한 현상은 직업별 취업현황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신직업분류에 따른 직업별 취업현황은 1993년과 1996년의 통계를 비교하면, 입법자·고위 임직원 및 관리자,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 단순 노무직 근로자의 경우는 거의 비슷하나 전문가·기술공 및 준전문가의 경우 취업비율이 3.4%나 증가했고, 서비스 근로자 및 상점과 시장 판매근로자의 경우는 0.8% 정도 증가하였다.

 

반면에 전체 취업자에 대한 사무직원과 기능원·기계 조작원 및 조립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1.9%와 2.3% 감소하였다. 이는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에 취업하는 사람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감소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전국적인 취업현황과 비교, 고찰하면, 입법자·고위 임직원 및 관리자, 전문가·기술공 및 준전문가, 사무직원, 서비스 근로자 및 상점과 시장 판매근로자의 경우는 전국적인 구성비에 비해 월등히 높으나,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 기능원·기계 조작원 및 조립원, 단순 노무직 근로자의 경우는 훨씬 낮은 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찍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해 온 서울에 정부의 중추기관들이 들어서 있고 각 기업체와 금융기관 및 경제·사회·문화 단체 등의 본사나 본부가 집중 분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농업인 1차산업은 미미한 정도이며 식량작물·소채류·특용작물·과일류 등을 생산하는 근교농업의 형태로 영위되고 있다. 2차산업인 제조업에서는 사업체수와 종업원수, 부가가치 및 생산액 등에서 의복 및 모피제품이 수위를 기록하며, 출판·인쇄 및 기록매체 복제업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섬유제품을 의복 및 모피제품과 동일 계열이라고 간주한다면, 이들 두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사업체수에서 40.2%, 종사자수에서 38.9%, 부가가치에서 30.8%, 생산액에서 32.0%를 기록, 서울 제조업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의 제조업은 중공업 분야는 미약하고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였다.

 

제조업체의 규모면에서는 종업원 수 50명 이하의 고용업체가 전체의 95.8%를 차지하는 반면 200명 이상의 업체는 0.7%만을 나타내고 있어, 대부분의 산업체가 소규모 경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업체는 서울 전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나, 중구에 가장 많은 전체의 14.5%인 2,983개 업체가 입지하고 있으며, 일찍부터 공업지역이 형성되었던 영등포·구로·금천·성동구와 그 부근인 동대문·성북구 등에 전체의 53.5%가 집중 분포한다.

 

특히 구로구에는 구로공단이 있어 영등포·금천구와 함께 인천으로 이어지는 경인공업지구의 일부를 구성한다. 생산액은 금천·성동·영등포·구로·중구 순이며 이들 5개 구에서 전체의 50.5%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서울의 산업은, 3차산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나 1·2차산업은 감소현상을 나타낸다. 그 결과 서울 주변부의 토지는 근교농업용지로 사용되던 것이 주거지역의 확장 등으로 용도가 변경되었으며, 공장들로 사용되던 지역들도 상업지역·주거지역 등으로 용도가 변경되고 있다.

 

토지종별 현황에서도 논·밭·임야·공장용지는 계속 감소하는 반면 주거용 대지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서울의 산업구조는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에 속하는 3차산업 위주로 구성되어 있음을 입증한다.

 

상업활동도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부터 시작되어 육의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근대적인 시장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상업활동은 1905년 동대문시장이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세기 말 이후 일본인들의 이주가 증가하면서 지금의 퇴계로와 충무로 지역 일대에 근대적 상업활동 장소인 백화점을 비롯한 상가가 형성되었고, 종로에는 화신백화점이 한인 자본으로 설립, 운영되었다. 따라서 20세기 전반에는 종로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들에 의한 상가와, 명동 일대를 중심으로 한 일본인들을 위한 상가가 형성되었고, 종로네거리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현재의 상업지구가 이 시기에 이미 형성되었다.

1920년대 이후 공설시장과 사설 일용품시장의 설립이 증가하면서 상업활동이 활발해졌으나 6·25전쟁으로 상당히 위축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이루어진 경제발전에 따라 상업활동이 크게 성장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민들의 구매행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실제로 최근에는 24시간 편의점이 보편화되었으며, 대규모 상설할인매장이 등장하고 할인매장을 이용하는 구매자의 수도 증가일로에 있다. 이러한 상업활동의 변화는 도시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시장의 분포를 보면 일반시장 236개, 대규모 소매점 43개, 대형점 46개, 도매센터 3개가 있다. 대규모 소매점 중에는 백화점이 27개, 쇼핑센터가 27개이다. 일반시장의 경우, 전 지역에 걸쳐 입지하고 있으나 중구에만 42개가 있어 가장 많은 분포를 나타낸다. 그 다음에는 강남구에 21개, 영등포구에 14개, 서초구에 2개가 있다.

 

그러나 백화점의 경우는 차이가 많아 25개 구 중에서 13개 구에만 백화점이 입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중구와 강남구에는 5개씩 분포하고 있다. 대형점은 강남구에만 3개로 가장 많이 입지하고 있고, 도매센터는 중구와 서초구에만 각각 1개와 2개가 있다. 결국 유통업체는 전통적인 상업지구가 위치하고 있는 중구와 신상업지역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강남구·송파구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전문상가로는 전국에 의류를 공급하는 남대문 의류상가와 함께 동대문 주변의 평화시장, 전국 농수산물의 집산과 재분배를 맡고 있는 가락동농수산물시장, 용산전자상가, 노량진수산시장 등이 있으며, 경동시장·중부시장·중앙시장 등은 일부 상품을 주거래 품목으로 취급하는 특수시장 구실을 하고 있다.

 

금융서비스업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한국인에 의한 3개의 보통은행(대한천일은행·한성은행·한일은행)이 설립, 운영되기 시작했으며, 수형조합(手形組合)과 농공은행(農工銀行)도 설립되었다. 금융제도는 경술국치 이후 일본인에 의해 변화되었는데, 중앙은행(조선은행) 또한 일본인이 운영했으며 한국의 경제잠식을 목적으로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이 설립되었다. 이들 은행은 남대문로에 있었는데,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에 상업활동과 함께 명실공히 서울의 경제적 중심지였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도 지속되어, 각종 금융기관의 본점과 증권회사·제2금융기관·보험회사 등이 남대문로 주변지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의도에 증권감독원을 비롯해 증권회사가 집중되어 있는 증권가가 형성되었고, 강남 지역에 새로운 금융서비스업 지역이 형성되고 있다. 종로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남대문로 주변지역에는 백화점·상가·호텔·음식점 등의 집중 분포와 함께 주요 상업지역으로서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서울시 교통

조선시대 서울의 교통은 주로 도보로 이동했고, 일부 계층에서만 가마·초헌·말 등을 이용하였다. 개항과 더불어 도입된 신문명으로 교통수단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전기의 부설과 함께 시내 대중교통수단인 전차가 1899년에 최초로 운행되기 시작했고, 같은 해에 시외 교통수단인 철도도 개통되어 서울과 지방을 연결시켜 주었다.

 

서울은 조선시대에 역로나 파발로 등을 기초로 한 전국 교통통신망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는데 기여했으며, 현재에도 철도망·도로망·항공로망의 중심지이다. 철도는 서울에서 인천으로 연결되는 경인선의 개통을 시작으로 경부선·경의선·경원선·경춘선·중앙선 등의 기점으로서 전국 철도망의 중심지이다.

 

도로는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모든 국도·지방도로·고속도로의 기점으로 사통팔달해 있다. 특히 서울을 기점으로 경인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 등으로 이어져 전국 어느 곳으로나 쉽게 통한다. 이러한 전국 교통망상의 구심점 역할은 물자의 유통, 인구의 이동에도 영향을 미쳐 서울로의 인구유입 및 기능의 집적에 큰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항공교통도 국내선 및 국제선의 노선이 집중되어 있고,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국제공항은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포공항은 국내항공 노선도 같이 운행하고 있다.

 

시내 교통수단은 주로 도보로 도시 내 이동을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이동할 수 있는 전차가 등장하면서 서울시민의 중요한 운송수단으로서 환영을 받았다. 물론 당시에 자전거·인력거 등이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전차의 인기는 대단했고, 전차노선의 증설이 지속되었다. 1928년 버스가 시내 대중교통수단으로 운행을 시작했으나 1932년에 시외 교통수단으로 바뀌면서, 시내 대중교통수단은 전차로 단일화되었다. 광복과 6·25전쟁으로 교통의 발달이 위축되기는 했으나, 서울의 재건과 함께 전차는 서울의 주요 교통수단이 되었고 버스도 새롭게 시내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운행을 재개하였다.

 

그러다가 도시의 확장으로 전차노선 확장의 어려움이 제기되었으며 전차의 공간적 제한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반면 버스는 궤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므로 도시 전역을 운행할 수 있어, 요금은 전차보다 비쌌으나 버스 이용자수는 계속 증가하였다.

 

1957년 버스 이용자수가 전차 이용자수를 능가하게 되었고, 시내 대중교통수단으로서 버스가 전차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도로의 혼잡, 교통의 방해, 지하도 건설 등을 이유로 1968년 전차의 운행이 정지되자 버스가 서울시내 유일의 대중교통수단으로 등장하였다.

 

1903년 고종을 위해 처음 등장한 자동차는 점차 그 수가 증가했고 1920년대부터 운행되기 시작한 택시도 서울시민을 위한 주요 교통수단이 되었다. 인구 급증에 의한 자동차의 증가, 도로의 부족 등은 새로운 교통수단의 필요성을 초래해 결국 1974년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지하철은 전철과 연결되어 서울 부근의 지역과 수원·인천까지 운행됨으로써 대도시권 형성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1980년대 들어 지하철 2·3·4호선이 연이어 개통했고, 제2기 지하철인 5·6·7·8호선의 개통 운행에 이어 9호선이 개통되었다.

 

실제로 1일 시민교통량 수송분담률을 보면 서울시내 교통수단의 역할 변화를 추측할 수 있다. 즉, 1990년에는 버스 이용자 43.3%에 이어 지하철 이용자가 18.8%로 두 번째를 차지하였다. 그밖에 승용차와 택시 이용자가 각각 14.0%와 12.8%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1996년에는 버스와 지하철 이용자가 각각 34.9%와 34.1%를 차지해 거의 비슷한 정도를 보이고 있다. 또 승용차와 택시 이용자는 각각 13.4%와 8.2%를 차지해 교통수단별 수송분담률 순서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1996년의 수송분담률을 1990년의 경우와 비교하면, 지하철의 경우만 급증했을 뿐 버스·승용차·택시는 수송분담률이 모두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아직은 버스가 서울시민의 중요한 운송수단이나 계획 중인 지하철이 모두 완성되어 서울시 대부분의 지역이 지하철 역세권 내에 들게 되면, 서울의 교통체계는 지하철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교통체계로 바뀌리라 예상된다. 더구나 자가용승용차의 경우 버스나 택시의 경우와는 달리 수송분담률은 감소했으나 실질 이용자수는 증가해, 승용차의 증가가 버스 및 택시의 이용률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교통은 지하철·자가용승용차·버스·택시가 공존하는 가운데 지하철과 자가용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광

500년간 백제의 도읍지이자 또한 조선왕조 이후 600년의 수도로서 한국의 문화유산이 집중되어 있는 민족문화·예술의 중심지인 서울은 여러 고궁과 성곽을 비롯해 발 닿는 곳마다 사적지요, 유서 깊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서울은 고대와 현대가 서로 어울려 공존하면서 전통을 계승, 발전해 가고 있으며, 도시와 자연관광을 겸해 즐길 수 있는 큰 자원권(資源圈)을 형성한다. 활엽수와 침엽수가 대보화강암과 어우러진 수려한 암봉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동서로 뻗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푸른 기슭을 지니고 있으며, 경승을 이루는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의 내사산과 삼각산·도봉산·관악산 등의 산악이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서로 흐르는 수도의 젖줄인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강북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현대적 시가지와 청계천 복원으로 이루어진 도심 하천 구간의 경관이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문화재의 보고라 할 수 있는 관광 서울의 매력은 찬란한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궁들로 집약된다.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으로 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자경전·경회루·동궁전·향원정이 있으며, 건청궁을 비롯한 부속건물지가 발굴되어 중건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조선왕조 정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 서울을 상징하는 관광자원으로 구실하고 있다.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5대 궁궐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되어 온 궁궐로 특히 부용지를 비롯한 후원 지역의 전통정원으로서의 아름다움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데 큰 가치로 부각되었다. 이밖에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된 동궐로서, 덕수궁(경운궁)은 대한제국의 황제궁으로서의 의미를 간직한 소중한 관광자원이다.

 

고적으로는 독립협회가 자주독립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세운 독립문, 조선왕조 역대 임금과 왕비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 사직의 제사를 위한 사직단, 동묘, 성균관, 보신각종, 강감찬의 유적지인 낙성대, 근대우편사업의 발상지인 우정총국,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 세운 칭경기념비전 및 내사산의 자연적 지형을 이용해 축조한 서울 한양도성 등이 있다. 이밖에 강동구와 송파구 일대의 백제시대 문화유적과 암사동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연차적으로 정비, 복원되어 사적공원 및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무원이 있는 조계사가 도심 한복판에 있고, 도선사·봉은사·화계사·흥천사·승가사·진관사·봉원사 등의 사찰이 있다.

 

서울시가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남산공원에서는 세계에서 세 번째 높은 서울타워가 있어 사방으로 크게 발전한 수도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3·1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유서 깊은 탑골공원에는 팔각정을 중심으로 원각사지 십층석탑·대원각사비·앙부일구의 받침돌 등을 비롯한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다. 이 밖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푸른 꿈을 심어주는 서울어린이대공원·드림랜드·사직공원·삼청공원·효창공원·보라매공원 등이 녹지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각종 경기장이 있는 올림픽공원은 세계적인 공원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백제 초기의 몽촌토성(夢村土城)과 어우러져 고대와 현대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데 귀중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의 중심지인 만큼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석촌호수의 서울놀이마당과 롯데월드, 삼청각, 한국의 집 등의 각종 문화시설이 있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문화공연과 예술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잠실벌에는 서울올림픽대회 때 각종 경기장 등의 스포츠 시설이 들어선 종합운동장이 있다.

 

한편, 도심 반경 45㎞ 내의 수도권을 지하철과 전철이 1시간 거리로 감싸 교통수송의 대량화와 고속화 시대가 전개되면서 서울 관광의 안락함과 매력에 한층 빛을 더해 주게 되었다.

 

더욱이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동쪽의 천호대교에서 서쪽의 행주대교 너머까지 한강의 남·북안을 달리는 상쾌한 강변로는 한강의 유유한 풍물들로 새롭게 단장되었으며, 한강은 산뜻한 유람선이 떠다니고 여의도에 63층의 빌딩이 세워져 경관이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또한 인왕산 산허리를 달리며 북악의 정상을 누비는 인왕·북악의 두 산길은 남산공원의 순환도로와 함께 남·북에서 서로 서울의 장관을 마주 보게 한다. 관광 관련시설로는 국제수준급의 관광호텔을 비롯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반 호텔과 여관 등이 완비되어 있다.

 

특히 서울올림픽대회를 계기로 국력을 과시하고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도시로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문화민족임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서울은 눈부신 건설과 도시정비로 한강변의 기적을 이룩함과 동시에, 격조 높은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문화도시를 건설하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인사동 전통문화거리와 북촌 전통공예 창작활동과 체험공간으로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와 수준 높은 문화를 알리는 공간이 되고 있다. 그리고 동대문시장·남대문시장·황학동벼룩시장·봉익동귀금속시장 등 우리의 생산 물산의 다양함과 높은 소비문화를 살필 수 있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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