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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구별 인구

중구 인구수(BUSAN) - 2024년

by allinfo's today 2024.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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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인구수 2024년

 

 

 

 

부산시 중구 개요

동쪽으로 동구, 서쪽으로는 서구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남항에 연해 있고, 부산대교와 영도대교로 영도구와 연결된다. 동경 129°01'~129°02', 북위 35°05'~35°06'에 위치한다. 면적은 2.83㎢이고, 인구는 4만 581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9개 행정동(41개 법정동)이 있고, 구청은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1가에 있다.

 

 

 

 

 

 


 

부산시 중구 역사

일제가 조선을 본격 지배하면서 이 지역은 1910년 무렵 종전의 동래부에서 부산부의 관할지역으로 변경되었으며 일본인의 전관거류지, 일본 조계지로 전환되었다. 오늘날 중구지역이 일대 확장과 부산의 중심지로 기능을 하게 된 계기는 이 시기의 매축공사였다. 이로 말미암아 부산, 중구에 북항과 남항에 근대적인 항만이 설립되고 비로소 무역 항구로서의 기능을 하게되었다.

 

해방 이후 해외 동포가 귀환하고 한국전쟁 때 임시수도가 되면서 피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이곳 중구를 중심으로 인구가 급증했다. 산록으로 주거지역이 확대되었으며 영주동을 중심으로 불량주거지역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산업화 이후 부산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고층 빌딩이 입지했다.

 

그러나 도시 확장이 서면 쪽으로 확대되면서 부산시의 중심이 이전되기 시작했고, 시청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기관과 사법기관들이 연제구 쪽으로 이전하면서 행정중심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남포동을 중심으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가 매년 성공적으로 열리면서 중구는 부산의 역사·문화의 중심지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15구·1군 가운데 그 행정구역이 가장 작으면서도 국제시장·자갈치시장 등의 상가와, 수출입 화물선과 국내외 여객선이 입출항하는 부산항의 중심지이자 해상 운송망의 전진기지이다. 또한 행정기관이 이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100여 개의 금융기관과 7000여 개의 사무실이 집중된 행정·상업·중심업무 기능지역이다.

 

 

 


 

부산시 중구 인구(인구수)

중구의 총 인구는 38,385 명이고 세대수는 23,819 세대입니다.

행정기관 총인구수 세대수
중구 38,385 23,819

 

부산시 중구 동면읍 인구(인구수)

중구에서 보수동이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10,257 명, 세대수는 6,175 입니다. 두번째로는 영주제2동 인구가 많고 인구 6,502 명, 세대수는 3,489 입니다. 세번째는 대청동으로 인구는 5,761 명, 세대수는 3,438 입니다.

행정기관 총인구수 세대수
보수동 10,257 6,175
영주제2동 6,502 3,489
대청동 5,761 3,438
영주제1동 4,406 2,900
부평동 4,177 2,631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3,119 2,467
동광동 2,440 1,603
광복동 902 543
남포동 821 573

 

 

 

 

부산시 중구 인구(인구수) 그래프

 

부산시 중구 인구(인구수) 추이

중구 인구는 1966년 12만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 인구가 처음으로 10만명 이하로 감소했고 이후에도 인구가 꾸준하게 감소했습니다. 2024년 현재 3만 8천명이 중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산시 중구 산업 및 교통

중구는 부산시에서 대지와 도로율이 가장 높은데 이는 이 지역 일대가 매립되어 계획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1912년 완공된 영선산 착평공사로 현재의 중앙로가 형성되었고, 중앙동·대창동·남포동 일대의 바다가 매립되어 택지와 상가지로 조성되었다. 따라서 매립된 해안의 저지는 주로 도심 중심기능을 담당하며 중심상가지로 발전했다.

또한 남항이 인접해 있어 부산과 경상남도 일대의 어패류 공급지인 자갈치시장이 위치하며, 제빙공장·수산물가공공장 등이 있다. 남포항은 남항의 내만항으로 남포동 도선장으로부터 자갈치 시장을 지나 부산 공동어시장에 이르는 항으로서 연근해 수산물의 물량항으로서 우리나라 제1의 어항이다. 연안에서 조업하는 소형어선은 물론 멀리 황해와 동지나해 그리고 동해를 주어장으로 하는 중형의 어선들이 출입항하고 정박하는 곳으로 반대편에 있는 영도 남항동의 원양어업항과 함께 어업전진기지로 되어 있다.

본래 남포항은 이곳에 남빈 매축공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자갈치’로 불리던 자갈해안이자 남항을 조업무대로 하는 소형어선이 정박하던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매축되면서 남포항은 근대적인 어항으로 발돋움했고 현재는 우리나라 수산업을 주도해 가는 현대적인 어항으로 발전했다.

상업 중 소매 기능은 대부분 광복동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국제시장은 도매기능의 상업이 집중된 곳이다. 국제시장은 한때 국내 최대의 도매시장이었으나 시역 팽창으로 서면 일대에 많은 상업기능을 잠식당했다. 그러나 아직도 단일시장으로서는 최대 규모이다. 국제시장이 시장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과 함께였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전시통제물자가 한꺼번에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당시 국제시장 장터는 돗대기시장, 혹은 도떼기시장이라도 불렸고, 1948년에는 자유시장으로 개설되었다.

부산의 상권이 서면 방면으로 이동함에 따라 상권이 다소 침체되었지만, 현재도 여전히 부산 시장의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남포동은 서비스업이 밀집된 중심지로 광복동과 함께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지상에 상업시설뿐만 아니라 극장 등의 영화시설, 카메라 취급점 등의 전문상가가 밀집해 있다. 지하에도 상가가 형성되어 롯데1번가 지하상가와 코오롱 지하상가가 있다. 구의 중앙을 관통하는 대청로에는 미국문화원과 인쇄소·출판사 등이 있고 가구점들이 밀집해 전문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보수동에는 대청로의 북쪽 뒷골목에 고서를 취급하는 서점들이 있다. 한편 대청동에는 남일초등학교 정문에서 서쪽으로 향해 이어진 좁은 길 양쪽에는 인쇄업종이 집중되어 있다.

중구의 남북으로는 중앙로가 외부 지역과 연결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동서로 대청로가 관통하고 있다. 이들 간선도로의 이면에는 좁은 도로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산복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매우 복잡해 전형적인 도심 주택가의 도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영도구와는 영도대교와 부산대교로 연결된다. 부산대교는 중앙동과 영도구 봉래동을 잇는 부산최대의 연육교이다. 1980년 준공되었으며 부산항의 물동량을 원활히 하기 위한 산업도로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한편 남포동에는 자갈치시장과 영도 대평동을 잇는 뱃길이 아직 남아 있다.

서구와는 부산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부산에서 최초로 건설된 터널로서 중구 영주동과 서구 동대신동을 연결한다.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988년 제2터널이 완공되었다. 국제 페리부두와 연안부두가 관내에 있어 해상 교통의 관문 역할을 한다. 영주동에 소재한 국제페리부두는 제1부두의 남쪽 안벽에 해당되며 일본과의 정기여객선 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연안여객부두는 국제여객부두 남쪽인 중앙동 5가 연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남해안 일대와 제주도 간에 운항되는 연안여객선의 터미널이다.

중구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된 현대적인 항만 부두 중의 하나인 제1부두와 제2부두가 있다. 1913년 봄에 준공된 제1부두는 처음에는 부산과 시모노세키 간의 여객선 운항을 위한 선창으로 이용되었다. 해방 이후 국제 해상여객 수요가 증가하면서 1975년 국제페리부두가 건설되어 지금 제1부두는 벌크화물을 취급하고 있다. 제2부두는 제1부두에 이어 가장 오래된 부산항 부두의 하나이다. 1927년 준공된 제2부두는 교역상품 전용 하역부두로 건설되었으며, 그 후 현재까지 잡화전용 부두로 이용되고 있다. 1977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단행해 1979년 지금의 제2부두 기능을 갖춘 현대식 부두가 되었다.

 

 

 


 

부산시 중구 관광

중구 내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는 중구 한가운데 있는 용두산공원이 있다. 특히 이곳에는 부산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부산탑이 세워져 있다. 1973년 완공된 탑으로 부산탑 전신의 길이는 용두산 높이의 2배에 가까운 118m다. 탑의 맨 꼭대기는 경주 불국사 다보탑 지붕에 얹혀 있는 보개를 본떠 만들었다. 휴게실과 전망대에서는 주위의 높은 산과 부산의 남항과 북항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용두산공원에는 이외에도 충무공 이순신 동상, 사월민주혁명희생자위령탑 등 여러 시설을 갖추고 있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남포동에 위치한 자갈치시장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어패류 전문 시장이다. 옛날 보수천 하구 일대는 자갈이 많이 있었는데, 시장이 이 자갈이 많은 곳에 세워졌다는 이유로 지명이 유래되었다. 자갈치시장은 1946년 충무동 해안통 주변을 중심으로 임의단체인 생어상조합이 결성되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1950년 한국전쟁으로 많은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노점이 번창했다.

자갈치시장은 1986년 현대식 시설로 보수·개선되면서, 수산물 종합백화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1992년부터 매년 10월 자갈치수산물축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하철 자갈치역과 남포동역을 끼고 있어, 교통에도 편리하다. 여느 시장과는 달리 어패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갈치시장 동쪽 끝에 건어물도매시장이 있다. 마른멸치·오징어·문어·새우·굴비·각종 포 등 건어물, 김·미역·파래·조개 등 건해산물, 밤·대추·곶감 등 각종 제수용품이나 과일, 나물 등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전국의 중간 도매상은 물론 일반 소비자에게도 각종 건어물을 싼값으로 도소매하는 부산 제일의 건어물시장이다.

인근 영도다리의 중앙동쪽 다리 양쪽에 생약과 건재약 상점 약 40여 곳이 밀집해 있다. 원래 이 다리목에서 노점으로 민간 제약 재료를 취급하다가 현재는 점포로 발전해 수삼(水蔘)·건삼(乾蔘)·녹용·녹각·부자(附子)·토종꿀에 너구리·산토끼·두꺼비·자라 같은 것을 취급하며 전국적인 상권을 가지고 있다. 보수동에는 헌책방 골목이 있다. 국제시장 입구 대청로 네거리 건너 보수동 쪽으로 난 사선 방향의 좁은 골목길에 있다.

매년 10월 남포동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개최된다. 초기에는 아시아 국가들만 참석하는 지역 영화제였으나 해가 거듭될수록 규모가 확대되어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어 국내영화축제로는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다. 처음에 영화제의 스크린은 남포동에만 있었으나 지금은 확대되어 해운대에서도 열리고 있다.

1994년부터 용두산 일원에서는 부산시와 예총부산지회가 주최가 되어 문화거리 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축제 거리는 용두산 주위가 되는 중구 대청동 미문화원에서 미화당백화점을 거쳐 부산호텔 입구 보문당에 이르기까지 1.8㎞ 사이이다. 부산의 전통민속인 동래야류, 용머리울림들과 창작국악의 밤, 야외영화제, 오늘의 춤, 마당극, 중구민 백일장, 전위예술, 교향악단과 팝콘서트 등이 열린다. 자갈치 시장에서는 매년 10월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를 내걸고 축제가 개최된다. 이 축제는 부산의 명물 자갈치시장을 세계적인 수산물시장으로, 그리고 관광명소로 발전시켜 수산물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시작되었다.

대청동에는 부산근대역사박물관이 있다. 1929년 지어진 이 건물은 초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후인 1949년부터는 미국해외공보처 부산문화원이 되었다. 이후 미문화원이 철수하고, 1999년 대한민국정부로 반환된 것을 그 해 6월 부산시가 인수한 건물이다. 2001년 부산광역시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근대역사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부산지점)으로 개관했다. 전시내용은 외세의 침략과 수탈로 형성된 부산의 근현대역사를 중심으로 개항기 부산, 일제의 부산 수탈, 근대도시 부산, 동양척식주식회사, 근현대 한미관계, 부산의 비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주동에는 중앙공원이 있다. 일명 대청공원이라 불렸다. 대청공원은 인근의 대청동에서 유래했다. 현재는 부산민주공원으로 바뀌었다. 한국전쟁 당시 대청산 기슭에 있는 판자촌을 정리한 후 1983년 충혼탑과 함께 공원조성을 완료했다. 영주동에 있으면서 대청공원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공원고시를 할 때 대청동에서도 가까워 명명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공원의 명칭이 부산민주공원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광동에는 한태공원이 있었다. 과거의 복병산 고갯길 등성이에 수목이 우거진 빈터를 한태공원이라 했는데, 공원 지명은 소를 부리 때의 연장인 한태와 닮아 유래되었다. 남포동의 자갈치시장이 매립되기 전에는 이곳에 남빈해수욕장이 있었다. 부산항 개항장이 왜관지역인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되면서 이 해안은 일본인들의 해수욕장이 되었다. 일제강점 이후 일본인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자 인근에 송도해수욕장이 개발되었고, 남빈해수욕장은 1914년 폐쇄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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