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중구 개요
동쪽은 남구와 부평구, 서쪽은 영종도, 남쪽은 연수구, 북쪽은 서구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21′~126°38′, 북위 37°22′~37°34′에 위치한다. 면적은 133.19㎢이고, 인구는 11만 449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1개 행정동(52개 법정동)이 있으며, 구청은 인천광역시 중구 관동에 있다.
인천시 중구 역사
1945년 8·15광복 후 1949년 8월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인천부가 인천시가 된데 이어, 1962년 5월에는 시 조례에 따라 중부출장소가 생겼다. 그리고 1968년 1월 1일 법률 제1919호에 의해 동구, 남구, 북구와 함께 중구가 탄생하였다. 이때 북부출장소 관할이었던 송월동이 중구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7월에는 동구에 속해 있던 월미도가 중구로 들어왔다.
1981년 인천시가 직할시가 되면서 경기도에서 분리되었고, 1989년에는 경기도 옹진군에 있던 영종도와 용유도가 편입되어 영종동과 용유동이 되었다. 2001년 3월에는 영종도에 신공항이 개항되었다. 영종도와 용유도는 본래 인천부 영종면과 용유면이었는데, 1914년 부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부천군에서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던 지역이다. 중구는 그 뒤 1995년 3월 1일 법률 제4789호에 따라 인천시가 광역시로 개청되면서 인천광역시 중구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동 1가 9번지에 있는 구청 청사는 원래 인천시청 청사가 있던 곳이다.
인천시 중구 인구(인구수)
중구의 총 인구는 157,127명이고 세대수는 78,276세대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중구 | 157,127 | 78,276 |
인천시 중구 동면읍 인구(인구수)
중구에서 영종1동이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51,228명, 세대수는 19,934입니다. 두번째로는 운서동 인구가 많고 인구 36,408명, 세대수는 20,934입니다. 세번째는 영종동으로 인구는 22,599, 세대수는 11,719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영종1동 | 51,228 | 19,934 |
운서동 | 36,408 | 20,934 |
영종동 | 22,599 | 11,719 |
신흥동 | 13,815 | 6,635 |
개항동 | 6,957 | 3,884 |
연안동 | 5,516 | 3,106 |
동인천동 | 5,503 | 3,297 |
신포동 | 4,757 | 2,533 |
도원동 | 3,710 | 2,035 |
용유동 | 3,653 | 2,415 |
율목동 | 2,981 | 1,784 |
인천시 중구 인구(인구수) 그래프
인천시 중구 인구(인구수) 추이
중구 인구는 1970년 8만 9천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인구가 처음으로 10만명을 돌파했고 이후에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했습니다. 2023년 현재 15만명이 중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인천시 중구 산업 및 교통
인천 내항을 둘러싸고 있는 중앙·관동 일대에는 항만 관련 업무시설, 금융기관, 중구 행정관청 등이 밀집해 있다. 이곳에서 동인천역을 잇는 도로를 따라 자리 잡은 신포·인현·내경동 일대는 상업기능이 특화되어 인천의 중심지가 되어 왔는데, 1970년대 이후 주안 및 간석·구월동 지역이 새로운 중심지가 되면서 주요기능이 이전되고 인구가 감소하는 등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다.
인천의 구중심지였던 이 일대는 도로가 협소하고 주거 밀집도가 높아 재개발 필요성이 높은 지역으로 상주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중구의 서쪽, 내항 바깥에 위치한 월미도 매립지 일대의 북성동 지역에는 항구 접근성이 요구되는 제당·목재·합판·조선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내항의 남쪽에 매립된 땅인 항동에는 연안부두가 있어 연안해운의 중심기능을 담당하며, 종합어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오늘날 토지이용은 농경지가 23.1%, 대지 및 공장용지가 6.7%, 임야가 46.5%, 도로용지가 3.9%를 차지한다.
이 지역의 교통망은 구릉지를 따라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대체로 불규칙한 패턴을 보인다. 1899년에 완공된 경인선 철도는 월미도 입구, 인천역이 종점이며, 중구 관내에 동인천역, 도원역 등이 설치되어 있다. 현재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역과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역을 잇는 수인선 철도는 신포역과 인천역이 중구를 지나고 있으며, 인천역이 수도권 전철 1호선과 연결되어 있다. 인천항은 1918년에 최초의 갑문식 독이 완공된 이후 계속해서 항만시설이 확충되어 서해 제일의 국제무역항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500톤 급 이하의 소형 어선 및 연안여객선은 내항 바깥 연안부두에 접안할 수 있도록 항만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영종도와 용유도를 연결한 대규모 매립지에 건설한 인천국제공항은 21세기 세계 항공교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여러 개의 연륙도로를 통해 인천 및 내륙지역이 연결되어 있다.
인천시 중구 관광
월미도는 원래 풀밭으로만 이루어진 섬이었다. 지금은 그 중간 해변을 육지와 맞닿도록 폭넓게 메워서 이름만 ‘섬(島)’ 자가 붙어있을 뿐 육지화되어 있다. 월미도가 유원지로 개발된 것은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다. 1918년 인천부는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할 것을 지정한 뒤 조탕과 해수욕장, 유희장, 오락장, 식물원, 용궁각 등의 시설을 조성해서 여름이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피서를 즐겼다. 지금은 월미산과 놀이동산, 문화의 거리, 카페와 횟집들이 월미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자유공원은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1897년에 세워진 서울의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보다 9년 앞서서 세워졌다. 서양인들이 조성한 공원이라 애초에는 ‘만국공원’이라고 불렀다. 일제는 한때 이곳을 ‘서공원’이라 불렀으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동상을 세우면서 공원 이름도 자유공원으로 바꾸었다. 시가지 일부와 항만시설 그리고 서해바다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공원이다. 봄에는 벚꽃축제가 열린다.
차이나타운에는 예부터 전국적으로 이름난 청요리집들이 있었다. 공화춘이나 중화루가 그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정통 청요리를 맛보기 위해 인천에 몰려들기도 했다. 우리나라 자장면이 시작된 곳도 바로 공화춘이다. 이곳에는 당시 웅장했던 옛 건물이 아직도 남아있어 화려했던 그 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이 일대에 최근 그 시절의 맥을 잇는 청요리집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30년 전통의 풍미와 옛 중화루 주방장의 손자가 운영하는 자금성, 그리고 대창반점, 상원 등이 그것이다. 해마다 이 거리에서는 세계 원조 자장면 맛보기 행사가 열린다.
신포동은 ‘인천의 명동’이다.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에서 입어야 하는 정장으로부터 멋쟁이 소리를 들을 만큼의 인상적인 패션에 이르기까지 신포동 패션 거리에 가면 만나지 못할 유행이 없다. 옷은 물론이고 구두, 액세서리, 가방, 미용실까지 그리고 고급브랜드부터 캐주얼, 보세전문점까지 이 거리에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오늘의 유행이 한눈에 보인다. 특히 최근에는 인천항을 드나드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신포 문화의 거리까지 이어져, 그들을 상대로 하는 전문매장이 속속 들어서면서 이국적인 풍물을 보여주며 퓨전식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인구 > 구별 인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추홀구 인구수(Incheon) - 2023년 (0) | 2023.09.10 |
---|---|
동구 인구수(Incheon) - 2023년 (0) | 2023.09.10 |
군위군 인구수(Daegu) - 2023년 (0) | 2023.08.17 |
달성군 인구수(Daegu) - 2023년 (1) | 2023.08.17 |
달서구 인구수(Daegu) - 2023년 (0) | 2023.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