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강화군 개요
동쪽은 경기도 김포시, 남쪽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쪽은 경기도 개풍군과 황해도 연백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2′∼126°33′, 북위 37°31′∼37°48′에 위치한다. 면적은 411.33㎢이고 인구는 6만 766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2개 면, 186개 행정리(96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이다.
인천시 강화군 역사
1962년 10월 1일 볼음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 강화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 하점면 양오리가 송해면에 편입되었으며, 1987년 6월 25일에 강화읍 신문리 일부를 관청리에, 불은면 삼동암리 일부를 삼성리에, 불은면 신현리 일부를 덕성리에 편입시켰다. 또 1991년 8월 8일에는 화도면 장화리 일부를 내리에 편입시켰다.
1993년 9월 13일에는 불은면 덕성리 일부를 길상면 길직리에, 길상면 장흥리 일부와 길직리 일부를 불은면 덕성리에 편입시켰다. 이듬해에는 강화읍 대산리 일부를 송해면 신당리에, 송해면 신당리 일부를 강화읍 대산리에 편입시켰다. 1995년 3월 1일 군 전체가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9년 1월 12일에는 송해면 양오리의 일부가 하점면 장정리로, 같은 해 4월 10일에는 하점면 망월리의 일부가 내가면 오상리에, 내가면 오상리와 구하리가 하점면 망월리에 각각 편입되었다.
오늘날 강화도에서는 강화문화제, 고인돌축제, 참성단 축제 등을 마련하여 진행되고 있다. 2005년 12월 말 기준 562개소의 문화재 내지 사적지가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83개소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인천가톨릭대학교가 설립되었고,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가 자리 잡게 되었으며, 가천의과학대학교 등이 개교되어 교육도시로서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인천시 강화군 인구(인구수)
강화군의 총 인구는 69,265명이고 세대수는 35,100세대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강화군 | 69,265 | 35,100 |
인천시 강화군 동면읍 인구(인구수)
강화군에서 강화군이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69,265명, 세대수는 35,100입니다. 두번째로는 강화읍 인구가 많고 인구 22,367명, 세대수는 10,659입니다. 세번째는 선원면으로 인구는 7,960, 세대수는 3,666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강화군 | 69,265 | 35,100 |
강화읍 | 22,367 | 10,659 |
선원면 | 7,960 | 3,666 |
길상면 | 7,249 | 3,692 |
불은면 | 5,085 | 2,774 |
화도면 | 4,559 | 2,470 |
양도면 | 4,218 | 2,218 |
하점면 | 4,032 | 2,094 |
송해면 | 3,271 | 1,682 |
내가면 | 3,049 | 1,653 |
교동면 | 2,770 | 1,550 |
삼산면 | 2,136 | 1,212 |
양사면 | 1,912 | 1,026 |
서도면 | 383 | 226 |
서도면볼음출장소 | 274 | 178 |
인천시 강화군 인구(인구수) 그래프
인천시 강화군 인구(인구수) 추이
강화군 인구는 1966년 11만 8천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 인구가 처음으로 10만명 이하로 감소했고 이후에도 인구가 계속해서 감소했습니다. 2023년 현재 6만 9천명이 강화군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인천시 강화군 산업 및 교통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지역별로 30% 이상의 인구가 집중해 있는 강화읍을 제외한 기타 면 지역에서 전체적으로 인구감소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내가면·하점면·교동면·삼산면 등이 높은 감소를 보이고 있다.
전 인구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통적인 농업 중심 지역이다. 내가면에 고려 저수지, 길상면에 온수리 저수지 등이 있어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간척에 의해 확장된 농경지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화도면 일대의 가릉평·선두평, 내가면·하점면 일대의 망월평, 삼산면 일대의 송가평, 교동면 일대의 염주평 및 영산평 등에서는 벼농사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벼농사 발달에 필수적인 농업용수는 낮은 땅들이 모두 방조제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소하천의 물이 최대한 활용되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어 쌀이 생산되고 있다. 기타 주요 농작물로 맥류·서류·두류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수도권과의 근접성에 의해 무·배추 같은 원예작물의 생산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의 ‘강화순무’라는 무는 인기가 있다.
임야지역에서는 도토리·밤·버섯·호두 등도 생산되고 있다. 경지면적은 군 전체 면적의 40%가 넘는 165.17㎢이며, 이 중 논이 126.73㎢를 차지해 논의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강화의 특산물로서 가장 이름이 높은 작물은 인삼이다.
인삼 재배에 적당한 화강암 풍화토가 널리 분포되어 있고, 기후 조건도 적당한 강화 지역에는 20세기 초부터 개성 지역으로부터 인삼 재배기술이 전파되어, 1970년대 중반에는 전국 수요의 절반이상의 인삼이 강화 지역에서 공급되는 등 화문석과 함께 강화 경제의 핵심을 차지해 왔다. 현재는 재배면적이 많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농가소득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화문석은 고려시대 이래로 강화 지역의 우수한 왕골을 원료로 생산되었던 또 하나의 특산물로서, 품질이 우수해 해외로 많이 수출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입제품에 밀려 명맥만 이어질 정도로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강화만 연안 일대는 좋은 어장을 갖추고 있어 새우·조기·가무락·숭어·도미 등 수산업이 발달했으나, 내륙에서 발달한 농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총 인구의 6%만이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새우젓으로 유명한 내가면 외포리는 수산업의 중심 어항이며, 백합·굴·김 등의 양식업도 일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차 산업의 경우, 한때 견직과 면직물을 생산하는 섬유공업이 활발했으나, 지금은 전체적으로 발달이 매우 미약해 1차 산업 중심의 산업구조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강화도는 물살이 빠른 염하를 사이에 두고 육지와 분리되어 있어 과거에는 주로 수운을 통해 서울 지역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현재 육지 및 서울로 연결되는 유일한 도로망인 4차선 48번 국도는 김포를 지나 강화대교를 통해 강화읍까지 이어지고 있다. 1970년에 개통된 강화대교는 강화읍 갑곶리와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를 연결하는 길이 694m의 다리이다. 최근에는 수도권에 인접한 역사, 문화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으면서 교통 수요가 폭증해 만성적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강화대교의 개통으로 정기버스노선이 대폭 증편되어 1982년 이후 서울방면은 150여편, 인천방면은 100여 편, 수원방면은 80여 편 등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1997년 8월 30일강화·서울 간 4차선 도로 확장, 너비 19.5m의 4차선 신강화대교 개통, 서울 및 인천과 서해안 고속도로로 연계되는 서울 88제방도로 및 외곽순환도로와의 연결은 강화 발전에 가속도를 붙여주고 있다. 또한 2002년 8월강화 초지대교가 개통되었으며 해안순환도로도 2009년에 완공되었다. 내가면 외포리는 수산업의 중심지이면서 아울러 석모도·교동도 등 인접 섬으로의 연결되는 여객 해운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인천시 강화군 관광
한반도의 중앙, 경기만에 위치하고, 개성과 서울로 들어가는 해상교통의 입구에 위치한 관계로 예로부터 역사적 사건의 중심 무대가 되어왔으며, 이와 관련된 유물, 유적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고조선시대에 춘추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마니산 제천단이 있고 이, 전국체전을 비롯한 체육행사 때마다 이곳 마니산 참성단에서 성화를 채화하여 대회장으로 봉송하는 곳이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사찰과 항몽 유적지, 선사시대 유물 등 민족의 역사를 반영해주는 유적지가 곳곳에 남아 있고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역사 문화 관광지라 할 수 있다.
불교 유적도 삼국시대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다. 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길상면 전등사의 경우 대웅전·약사전·범종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도 삼산면 보문사의 경우 석실과 마애석불좌상 등이 유명하고, 하점면의 오층석탑 및 석조여래입상, 화도면의 정수사법당, 선원면의 강화선원사지 등도 널리 알려진 불교 유적들이다.
강화는 고려조의 천도지였기 때문에 관련 유적들도 많이 남아 있다. 강화읍의 고려궁지, 강화산성 및 강화산성의 서문인 담화루(膽華樓), 남문인 안파루(晏波樓) 등이 유명하며, 고려 왕릉으로는 석릉·홍릉·곤릉·가릉 등이 있다.
이후 병자호란 때에는 다시 왕실이 강화로 천도하게 되어 현 강화읍을 중심으로 고려 말과 마찬가지로 임시수도로서의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다. 격변기를 제외한 조선시대에는 강화도와 교동도가 각각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확립하면서 관련 유적들을 남겼다.
강화읍 의 충렬사와 강화향교, 교동면의 교동향교가 대표적인 유교유적들이다. 구한말 일본 및 서구열강의 침입을 막는 최전방 구실을 했던 강화섬에는 염하의 남쪽 길목을 따라 길상면의 초지진, 불은면의 덕진진과 광성진 등 여러 방어시설들이 축조되었다.
이 외에도 해안을 따라 갑곶돈대 등 많은 돈대가 건설되었고, 현재에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래문물의 도입과 관련된 또 하나의 유적인 강화읍 성당은 1900년에 완공된 한국 성공회의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그 가치가 높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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