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개요
동쪽은 담양군, 서쪽은 함평군, 남쪽은 나주시, 화순군, 북쪽은 장성군과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6°38'∼127°00'34', 북위 35°03'∼35°15'이다. 면적은 501.18㎢이다. 행정구역으로는 5개 구, 95개 행정동(202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은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에 있다.
광주시 역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성내면 · 공수방 · 기례방 · 부동방을 광주면이라 칭했다. 1931년에 이를 광주읍으로 개칭하고 다시 1935년에 광주부로 개칭하면서 나머지 지역은 광산군이라 칭하게 되어 광주와 광산군이 분리되었다.
일제의 침입에 대항한 항일운동으로는 1906년 김원국(金元國), 1908년 양진여(梁鎭汝) · 양상기(梁相基) 부자와 김태원(金泰元) · 심남일(沈南一) · 신덕균(申德均) 등의 항쟁을 들 수 있다.
1919년의 3 · 1운동 때는 김철(金鐵) · 최흥종(崔興琮) · 남궁혁(南宮爀) 등이 주동해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였다. 1929년 11월 3일에는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파급되어 민족독립운동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였다. 한편, 1922년 7월에는 광주∼송정리간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1949년에 광주부가 광주시로 승격되어 시의회를 구성하였다. 1955년에는 광산군의 서방면 · 효지면 · 극락면과 석곡면의 일부 지역이 편입되었다. 1957년에는 광산군의 대촌면 · 지산면 · 서창면, 그리고 석곡면지역으로 담양군의 남면에 편입되었던 지역들을 회복하였다. 1960년 대촌면과 서창면은 다시 광산군에 환원되어 현재의 시역이 이때 갖추어졌다.
1973년부터 구제를 실시해 동 · 서 · 북구의 3구로 나누어 관할하였다. 1986년 11월 1일에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1988년 전라남도 송정시와 광산군이 직할시에 편입되면서 광산구가 설치되었다. 1995년 1월 1일 직할시의 명칭이 광역시로 변경되었다. 같은 해 3월 1일에는 서구를 분구해 남구가 설치되면서 5개 구가 되었다.
광주시 인구
광주시의 총 인구는 1,415,774명이고 세대수는 656,755세대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광주광역시 | 1,415,774 | 656,755 |
광주시 구별 인구
광주시에서 북구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421,968명, 세대수는 200,386입니다. 두번째로는 광산구 인구가 많고 인구 395,031명, 세대수는 171,819입니다. 세번째는 서구로 인구는 282,898명, 세대수는 133,721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북구 | 421,968 | 200,386 |
광산구 | 395,031 | 171,819 |
서구 | 282,898 | 133,721 |
남구 | 209,022 | 95,449 |
동구 | 106,855 | 55,380 |
광주시 인구 그래프
광주시 인구 추이
광주시 인구는 1949년 26만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1985년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고 2015년 가장 많은 인구인 147만이 거주하였습니다. 2024년 현재 141만명이 광주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광주시 산업 및 교통
호남지방의 행정 · 상업 및 교통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호남문화의 산실이기도 하다. 산업별 취업자 현황을 보면 농림어업이 2.8%, 광공업이 12.5%, 사회간접자본 및 서비스업이 84.8%이다(2007년). 농업은 농경지면적이 1만 1941㏊(2007년 현재)로 논과 밭의 비율이 3: 1이며, 농가는 1만 2798가구로 전 농가의 60.7%가 전업농이고, 농업인구는 3만 9949명이다. 경제활동인구 중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4.3%로 그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지역의 농경지에는 평동저수지와 서창저수지 등이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광복 전에는 주로 쌀 · 보리 · 콩 · 수수와 면화 · 대마 등이 생산되었으나, 광복 후 대도시로 성장함에 따라 도시생활에 필요한 각종 소채류를 생산하는 근교농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광산구지역에서는 넓은 들에서 벼농사와 시설원예농업을 하는데 주로 고추 · 상추 · 쑥갓과 밭에서는 무 · 배추의 수확이 끝나면 수박 · 참외 등을 재배한다. 최근에는 화훼수요의 증가로 국화 · 백합 등을 재배해 대도시로 반출된다. 무등산에서는 수박과 춘설차도 생산된다.
공업은 시의 역사나 규모에 비해 발달하지 못했다. 조선시대에는 종이 · 가구 · 붓 · 먹 · 화살 · 활통 · 북 등 생활용품의 자료와 완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공장들이 있었다. 광주북 · 진다리붓 · 각궁(角弓) 등은 현재도 전통공업으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근대공업의 발달은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는 면화와 양잠을 원료로 하는 방직 · 제사업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광복 당시는 방직공업이 전체 공업의 3분의 2를 차지했는데, 이는 원료와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일제의 식민지 공업정책의 결과였다.
1960년대를 지나면서 주업종이 기계 · 금속 · 섬유 · 화학공업 등으로 다양해졌다. 서구 광천동 일대에 1969년 43만 5000여 평 규모의 광주공업단지가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시가지의 확대로 공장이 시 외곽지역으로 이전하고 자동차 관련업종만 남아 있다.
‘광주권생산도시화운동’이 본격화된 1978년 이후 지역 상공인들이 자력으로 조성한 최초의 공단인 송암 · 본촌공단이 준공되었다. 송암공단은 1975년 광주시가 당시 도심에 산재해 있던 29개 연탄공장에서 생기는 공해를 없애고, 연탄 생산능력을 높여 수급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 대단위 연탄공장을 설립함으로써 조성되었다. 1983년 12월에 준공된 송암공단은 11만 9,000평의 부지면적으로 조립금속 · 화학 · 금속 · 섬유 등 64개 업체 중 58개 업체가 가동 중이고 6개 업체는 휴업 중이다. 종업원수는 1,317명이다.
1983년 준공된 본촌공단은 28만 3,000평의 부지면적으로 식품, 조립금속, 섬유제품, 목재 및 나무제품, 화학제품, 비금속, 보관, 창고, 운송, 기타 제조업 등의 112개 입주업체가 있다. 1983년 5월 준공된 소촌공단은 5만 7,000평으로 음식료품, 섬유의복, 석유화학, 비금속광물, 1차금속, 조립금속, 보관, 창고, 운송 등 57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1988년 12월 준공된 소촌농공단지는 9만 8,000평으로 음식료품, 섬유의복, 석유화학, 비금속광물, 1차금속, 조립금속, 보관, 창고, 운송 등의 43개 업체가 입주하고 있다.
하남공단은 지역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IBRD 차관을 도입하여 조성된 산업단지로 180만 4000평의 규모로 1983년에 1차단지가, 1989년에 2차단지가, 1991년에 3차단지의 조성공사가 완료되었다. 1차단지는 금속 · 화학 · 음식품 등 142개 업체가 있고, 2차단지는 조립금속 · 화학 등 231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3차단지는 조립금속 · 식품 · 화학 등 304개 업체가 가동 중에 있다.
평동공단 1차단지는 48만 9000평에 1995년 조성공사를 완료해 음식물, 목재 · 종이, 석유 · 화학, 비금속, 1차금속, 조립금속, 전기전자 등 127개 업체에 분양되어 112개 업체가 가동 중이다. 평동외국인기업전용공단은 1995년 8월 37만 3,000평을 준공해 음식물, 석유 · 화학, 목재 · 종이, 비금속, 비금속, 기계, 전기전자, 운송장비 업종의 49업체가 분양 받아 38개 업체가 가동 중에 있다. 첨단산업단지는 총 용지면적 240만 평 중 산업용지는 51만 8000평으로 석유화학, 기계, 전기전자, 운송장비 등의 201개 업체가 입주하여 152개 업체가 가동 중에 있다.
광주의 경제활동인구는 48만 9000명으로 이 중 취업자수는 농림업 2만 7000명, 제조업 6만 9000명, 사회간접자본 및 서비스업 42만 3000명, 실업자수 1만 5000명으로 실업률은 2.8%이다. 수출 현황은 약 18억 5000만 달러로 전국구성비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수출품으로 전기 · 전자, 철강 · 기계, 섬유 · 고무 제품이 약 97%를 차지하며, 지역별로는 아시아, 유럽, 대양주 · 중남미, 미국 순이다. 1995년 현재 수입액은 11억 9000만달러이다.
광주시의 상업기능은 간선인 호남선과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일제가 자원을 반출하기 위해 광주 대신 항구도시인 목포의 개발에 치중함에 따라 광복 전까지는 전라남도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광복 후 도청 소재지로서 행정과 상업기능을 회복하고, 특히 1952년 상무동에 군 장교 교육기관인 상무대(尙武臺)가 자리 잡은 후 군인을 대상으로 한 소비경제가 늘어났었다. 상무대는 현재 장성군으로 이전하였고 그 터에 상무지구라는 대단위 주금융기관은 한국은행을 포함해 186개 지점이 있다. 현재도 제3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약 79%로 소비도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금남로를 중심으로 한 단핵의 도시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대도시보다 교통문제가 심각하다. 도로망은 관청 · 금융 등 중심업무기능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집중된 금남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나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도심 외곽지역으로 시가지가 확대되고 새로운 주택단지가 건설되면서 도로망이 도시 외곽으로 뻗어가고 있다.
도로는 총연장 1,604㎞로 고속도로가 17㎞, 일반국도가 93㎞, 시도가 1,494㎞를 차지하고, 이 도로 중 99.9%가 포장되어 있다. 제1순환도로가 개통되어 교통체증을 많이 해소시켰고, 외곽에 제2순환도로가 2007년에 개통되었다.
지하철 1호선 공사가 1996년 2월 28일에 기공식을 하여 2004년 4월 28일에 1호선 1구간 녹동역∼상무역이 개통되었고, 2008년 상무역에서 평동역까지 1호선 2구간이 개통되었다. 순환선인 2호선과 백운광장∼서방시장∼첨단지구로 연결되는 3호선 공사가 완공되면 광주시의 교통체계에서 지하철을 중심으로 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또한 호남고속도로가 광주시를 통과해 남해고속도로, 광주대구고속도로와 연결된다. 그리고 광주를 기점으로 목포 · 순천 · 서울 · 대구 등지로 이어지는 국도와 광주의 주변지역으로 연결되는 지방도가 있다.
육상교통 중 도로교통은 도심에 분산되어 있던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공용터미널을, 광천동의 광주공단이 주변공단으로 이전한 터에 광천동종합버스터미널로 통합 · 확장해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되었다.
철도교통은 호남선 철도가 1914년에 개통되었고, 송정역에서 광주를 잇는 철도가 1922년에, 1934년에 광주∼여수간 철도가, 광주∼담양간 철도가 개통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의 태평양전쟁 시기에 철거되어 현재는 곳곳에 노반만이 남아 있다.
호남선 중에서 대전에서 송정역까지는 복선화가 이뤄졌고, 송정리역에서 목포역까지 복선화 공사가 2003년 완공되어 전 구간이 복선화되었다. 도심의 발전에 많은 장애를 가져온 경전선의 도심 통과 부분 중 효천역에서 광주역까지 구간을 철거하고 경전선과 호남선을 연결하는 구간이 신설되었다. 경부고속철도가 2004년 4월 1일 개통되어 광주역에서도 KTX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광주역에서 신탄진의 경부고속철도 접속구간까지는 기존의 선로를 이용하지만 2006년부터 호남고속철도 사업이 시작되어 오송∼광주구간은 2015년, 목포까지는 2017년까지 건설될 것이다. 현재 광주의 여객열차의 운행은 광주역∼용산역 구간은 KTX 왕복 10회, 새마을호 왕복 3회, 무궁화호 왕복 4회, 광주역∼목포역 구간은 무궁화호 2회로 총 왕복 19회, 목포역∼송정리역∼용산역 구간은 KTX 왕복 8회, 새마을호 왕복 2회, 무궁화호 왕복 6회, 송정리역∼순천역 구간은 무궁화호 왕복 4회로 총 20회가 운행되고 있다.
현재 중흥동에 있는 광주역사는 1961년 1월에 도심의 대인동에 있던 구역사를 이전한 것으로 철도수송은 여객이 약 115만 명, 화물이 8098만 톤(2007년 현재) 정도이다. 항공교통은 광주공항을 통해 서울 · 제주와 연결되고 있다. 해외로는 광주 · 상해 노선 등이 정기 · 부정기적으로 운항되었으나, 2007년 무안국제공항이 신설됨에 따라, 국제선의 기능은 완전히 이전되었다. 광주공항이용 여객은 약 140만 명, 국제선은 12만 명, 화물은 2159만 톤(2007년)이다. 광주공항의 국내선 여객은 2004년 4월 1일 KTX의 개통으로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이다.
광주시 관광
광주광역시는 예향의 본고장답게 ‘맛’과 ‘멋’이 어우러진 남도의 중심도시이다. 예로부터 광주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불리우며 남도문화를 이끌어왔다. 맛깔스런 남도음식은 빼어난 맛과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고 있으며, 1980년 5 · 18민주화운동 당시 중심지역이였던 충장로와 금남로는 도심관광의 중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광주는 무등산국립공원과 가사문화권을 비롯하여 다양한 자연적 · 사회문화적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시의 동남쪽에 위치한 무등산은 불과 10㎞ 거리에 있는 천연관광지로서, 이 산에는 증심사 · 원효사 · 약사암 · 규봉암 등의 사찰이 있으며, 900여 종의 식물도 분포하고 있다. 또 증심사계곡 · 원효계곡 등은 물이 시원하고 수림이 울창해 광주시민이 즐겨 찾는 유원지이다.
특히 1990년 4월부터 출입이 개방된 무등산의 3대 절봉인 서석대 · 입석대와 규봉이 10여m 높이로 솟아 병풍처럼 장엄하게 둘러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광주시내에서 무등산장과 증심사 입구까지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인근에 숙박시설도 잘 되어 있으며, 음식으로는 영계백숙과 보리밥이 유명하다.
호남고속도로 서광주인터체인지 입구에 있는 중외공원문화벨트지역은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된 송 · 원대의 도자기 유물 등 남도의 각종 유물이 전시된 국립광주박물관, 어린이공원과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광주예술의전당,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이 있다.
광주의 축제는 5대축제와 구에서 주관하는 지역축제가 있다. 5대 축제는 광주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임방울국악제, 광주김치대축제, 광주국제영화제가 있고, 지역축제로 동구의 7080 · 충장로축제, 서구 만드리 풍년제, 남구 칠석동 고싸움놀이 대축제, 북구 자미축제가 있다. 광주의 대표적인 축제인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에 광복 50주년과 ‘미술의 해’를 기념하고 광주의 예술 전통과 5 · 18광주민중항쟁 이후 국제사회 속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광주 민주정신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창설되어 중외공원문화벨트 일원에서 2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는 문화 · 민주도시 광주를 매개로 한국 · 아시아 · 세계가 동시대 문화와 미래 비전에 대한 교류의 장을 펼치는 국제적 미술문화 축제의 장으로 9월부터 11월에 걸쳐 개최되어 국내외의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
광주시의 주요한 관광자원의 하나는 예향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유산이다. 무등산 산자락을 타고 꽃피운 찬란한 가사문학이 ‘예향’의 대표적 상징이다. 송강정철의 ‘성산별곡’으로 유명한 식영정과 면앙정, 환벽당, 조선시대 대표적 민간정원인 소쇄원 등이 가사문학권을 형성해 목적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10월 중순에 개최되는 광주김치대축제 등이 새로운 이벤트 관광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5 · 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됨으로써 전남도청 앞 분수대 등 5 · 18과 관련된 장소들이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우치공원은 사직공원에 있던 동물원을 이전 · 확장하고 패밀리랜드라는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다. 기타 관광지로 포충사 · 충장사 · 광주향교, 1997년 11월 3일 새로 단장한 학생독립운동기념탑 · 광주공원 · 사직공원 등이 있다.
광주시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2004년 3월 대통령 소속 문화문심도시조성위원회가 발족하여 약 2조원의 사업비를 투여하여 2023년까지 사업이 진행될 것이다. 이 사업을 위한 핵심과제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구 전남도청 일대에 건립하여 문화를 통한 국가균형발전의 실현, 문화 발전을 통한 국가 발전 동력의 창의성의 실현,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통한 국가 수준의 문화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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