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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구별 인구

부산진구 인구수(BUSAN) - 2024년

by allinfo's today 2024.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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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진구 인구수 2024년

 

 

 

 

부산시 부산진구 개요

동쪽으로 연제구, 서쪽으로 사상구, 남쪽으로 서구·동구·남구, 북쪽으로 북구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9°00'∼129°05', 북위 35°07'∼35°11'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29.70㎢, 인구는 38만 1572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3개 행정동(11개 법정동)이 있고, 구청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에 있다.

 

 

부산진구청

부산진구 일자리통합지원 플랫폼

www.busanjin.go.kr

 

 

 


 

부산시 부산진구 역사

일제강점기 부산진구 지역은 동래군에 편입되었다가 1936년 부산진출장소가 설치됨으로써 부산부에 속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초읍, 연지, 범전, 부전, 양정, 전포, 부암, 당감, 가야, 개금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1938년에는 부전동이 부전1동과 2동으로 분동되었다.

광복 이후 부제(府制)가 폐지되고 시제(市制)가 실시되어 부산부도 부산시로 개칭되었다. 이에 부산진출장소도 부산진구로 행정명칭이 변경되었다. 1963년에는 동래군의 구포읍과 사상면이 부산시에 편입되어 부산진구의 관할이 되었고, 사상출장소와 구포출장소가 설치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 서면은 부도심의 기능을 담당했으나, 1960년대 이후 북쪽으로 시역 확장이 이뤄지면서 부산의 지리적 중심부에 위치해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주택지구는 개금동·당감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집중되었고, 1978년에는 부산진구 북부 출장소 관할구역이 북구로 승격, 분리되었다.

법정동으로는 부전(釜田)·범전(凡田)·연지(蓮池)·초읍(草邑)·양정(楊亭)·전포(田浦)·부암(釜巖)·당감(堂甘)·가야(伽倻)·개금(開琴)·범천(凡川) 등 11개 동이 있다.

 

 

 


 

부산시 부산진구 인구(인구수)

부산진구의 총 인구는 361,320 명이고 세대수는 183,993 세대입니다.

행정기관 총인구수 세대수
부산진구 361,320 183,993

 

부산시 부산진구 동면읍 인구(인구수)

부산진구에서 개금제3동이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26,679 명, 세대수는 12,182 입니다. 두번째로는 연지동 인구가 많고 인구 25,651 명, 세대수는 10,756 입니다. 세번째는 부암제1동으로 인구는 23,341 명, 세대수는 12,975 입니다.

행정기관 총인구수 세대수
개금제3동 26,679 12,182
연지동 25,651 10,756
전포제2동 23,341 12,975
부암제1동 23,127 10,476
범천제2동 21,526 11,257
당감제1동 20,932 9,925
전포제1동 20,723 12,020
초읍동 20,398 9,708
부암제3동 20,283 8,362
양정제1동 18,859 9,240
개금제1동 18,265 9,824
가야제2동 18,131 8,081
가야제1동 16,567 9,252
부전제1동 15,757 10,768
양정제2동 14,843 9,009
부전제2동 12,211 7,555
범천제1동 12,186 7,602
당감제2동 11,578 5,295
당감제4동 10,250 4,897
개금제2동 10,013 4,809

 

 

 

 

부산시 부산진구 인구(인구수) 그래프

 

부산시 부산진구 인구(인구수) 추이

부산진구 인구는 1966년 42만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인구가 처음으로 50만명 이하로 감소했고 이후에도 인구가 꾸준하게 감소했습니다. 2024년 현재 36만명이 부산진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산시 부산진구 산업 및 교통

상공업은 범내골교차로에서부터 동해남부선 및 우암철도에 이르는 서면 일대에 발달하였다. 이 지역은 오래 전부터 공업중심지역이었으나 상가와 주택지가 형성되면서 공장들이 점차 사상·신평·장림·양산공업단지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전국 신발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신발공업의 중심이다. 이밖에 섬유·기계공업도 발달하였는데, 제조업체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며, 지역별 업종을 보면 전포동에 모직·자동차·자동차부속공업, 연지동에 화학공업이 주로 분포하고 있다.

상업 및 업무기능은 서면교차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에는 금융기관이 집중하여 있고 지하상가·서면중앙시장·부전시장 등이 있어 부산시 도매업의 50%를 담당하고 있다. 구의 중심인 서면교차로에 소재한 서면지하상가는 1970년대부터 서면 상권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발달한 상가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교통시설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부전시장등 인근의 재래시장과 롯데백화점 등 현대 유통기관과 연계되어 있다.

이곳의 재래시장으로는 부전시장, 서면시장, 평화시장 등이 있다. 부전동에 소재한 부전시장은 농수산물, 잡화, 선·건어물, 의류, 생활용품, 신발, 인삼, 약초, 식료 등이 주거래 품목이다. 이곳은 원래 8·15광복과 6·25전쟁 때 피난민들의 가건물이 설치되어 있던 생활터전이었다. 소매업 중심으로 부산지역은 물론 울산·삼천포·경주 등을 상권으로 하고 있다. 범천동에 소재한 평화시장은 1969년 개장하였으며 지하철 범일동역을 낀 교통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부산진시장, 국제시장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이다. 서면시장에서는 식당, 쇠고기 등 육류, 생선 등 선·건어물, 쌀, 가방, 철물, 수입품, 과일, 의류 등 다양한 품종이 거래되고 있다.

범천동에는 부산상공회의소가 있다. 부산지방의 유일한 종합경제단체이며, 상공업의 종합적인 개선 발전과 상공인 권익 보호를 위한 업계의 대변기관으로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원래 신창동에 있었으나 1967년 중앙동에 이전하였고, 1989년 현재 위치로 회관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부산진구는 조선시대 중심지인 동래와 일제강점기 중 형성된 도시 지역과의 간선도로 중간에 있어 과거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또한 서면교차로와 사상구 감전동을 잇는 가야로가 간선도로 기능을 한다. 이 가야로는 1974년 낙동로와 만덕터널이 개통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오늘날의 서면 지역은 물론 동구, 남구, 중구 지역에서 김해나 서부 경남 지역으로 가기 위한 통로였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사상공단이 입지하면서 동서고가도로가 개통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교통체증이 심각하게 발생했던 지역이었다. 황령산과 금용산 사이의 마비치고개는 조선시대 동래와 부산포를 잇는 유일한 교통로였으며 현재는 연산교차로와 서면을 잇는 간선도로가 개통되어 있다.

부전동에 소재한 부전역은 1932년 서면 간이역으로 출발하였으며 1943년 부전역으로 개칭되었다. 경전선과 동해남부선의 시발·종착역으로 KTX 고속철도 개통과 더불어 역사를 신축하고 있다. 주요 교량으로는 부전동에 1956년 건설된 광무교가 있다. 서면교차로와 범내골교차로를 잇는 교량으로 동천에 가로놓여 있다. 부산 도심의 제일간선도로인 중앙로 상에 있는 중요 교량의 하나로 지하철 1호선이 나란히 달리고 있다.

 

 

 


 

부산시 부산진구 관광

부산진구에 자리한 산록은 일부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대부분은 녹지지역으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초읍동에 위치한 어린이대공원은 성지곡수원지를 공원화한 것으로 연 1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다. 1978년 세계 아동의 해를 맞아 어린이를 위한 공원으로 시설을 갖추고 어린이대공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공원 주변은 수원지를 중심으로 북으로 부태고개와 함박고개가 이어져 있고, 고개능선은 만덕고개가 연결되어 금정산에 이른다. 서남쪽으로 가면 가매골과 새마골을 지난다. 서쪽은 백양산과 이어진다. 동쪽은 새미산(금용산)이 된다. 수원지는 1907년 일본인들에 의해 착공되어 1909년 9월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상수도원의 수원지로서 제방의 높이가 27m에 이르는 당시로서는 거대한 토목공사였고, 서면에서 초량왜관(현 용두산공원 일대) 일대까지 급수한 유명한 수원지였다. 그러나 1972년 물금에 낙동강 상수도취수공사가 완공됨에 따라 이 수원지는 유원지와 어린이대공원으로 이용되었다.

한편 범전동에 있었던 과거 미군 하야리야부대가 있던 자리는 현재 부산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 중에 있어 좋은 관광지가 되고 있다. 부지 면적 약 16만 5000평으로 부전동 전체의 60%를 차지하는 면적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경마장으로 이용되었던 아주 넓은 평지였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일본의 전쟁물자가 이곳에 야적되기도 했다. 광복 이후 미군이 부산에 진주하자 부산 지역의 미군을 통합 지휘하기 위해 주한미군부산기지사령부가 이곳에 창설되었다. 정식 명칭은 ‘주한미군부산기지사령부’였다. 하야리야부대란 이름은 초대 미군부산기지사령관의 고향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초대사령관의 고향은 미국의 ‘베이스 하야리야’였는데 그 사령관이 하야리야 부대라 명명한 데서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야동에 소재한 정관읍은 원래 달성서씨의 집성촌이 있던 곳으로 개인에 의해 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후손들이 가야유원지라 이름을 고치고 이 장소를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개방하였다. 또한 양정동의 동래정씨 정문도공의 묘인 동래정묘를 중심으로 화지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노인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황령산에 기슭에는 2006년 레포츠 공원인 건립되었다. 레포츠 공원안에는 각종 경기를 할 수 있는 전천후 생활체육센터가 들어서 이전에 야외에서 해 오던 배드민턴, 농구 등의 경기를 실내에서 할 수 있게 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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