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중구 개요
행정·정보·금융·유통의 중심지로 대구 심장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동서남북이 신천, 달성 기슭, 명덕로 그리고 경부선을 경계로 각각 대구광역시 동구, 서구, 남구 그리고 북구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34'~128˚38', 북위 35˚51'~35˚89'에 위치한다. 면적은 7.06㎢이고, 인구는 8만 928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2개 행정동(57개 법정동)이 있다. 구청은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2가에 있다.
대구시 중구 역사
1953년 4월에 대구시 직할 동 중 동인 1가 외 16개동을 관할하는 중부출장소와 덕산동 외 37개동을 관할하는 종로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이후 1963년 1월 1일 중부·종로출장소가 통합되어 중구라 칭하였다. 그리하여 법정동 55개동(행정동 21개동)에 4.6㎢(인구 15만 1071명)를 관할하게 되었다.
1964년 12월 1일 북구 태평로 3가를 편입하였으며, 1970년 7월 1일 봉산동을 봉산 1구, 봉산 2구로 분동하였다. 1980년 4월 1일 남구 남산동·대봉동 일부를 남산 1동, 남산 2동, 남산 3동, 남산 4동으로, 남구 대명동 일부를 대봉 1동, 대봉 2동으로 중구에 편입하였고, 1981년 5월 16일 구청사를 동인 2가 1번지(현 시청주차장 소재)에서 동인 2가 78번지로 이전하였으며, 7월 1일 대구직할시 중구로 승격하였다.
1988년 5월 1일 자치구로 설치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광역시 개칭으로 대구광역시 중구로 개칭되었다. 1999년 6월 1일 구청소재지가 동인동2가 177-4번지로 이전 되었으며, 2011년 행정동 통폐합으로 13개 행정동에서 12개 행정동이 되었다.
대구시 중구 인구(인구수)
중구의 총 인구는 90,953 명이고 세대수는 45,964 세대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중구 | 90,953 | 45,964 |
대구시 중구 동면읍 인구(인구수)
중구에서 남산4동이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16,311 명, 세대수는 6,873 입니다. 두번째로는 성내3동 인구가 많고 인구 9,716 명, 세대수는 4,382 입니다. 세번째는 동인동으로 인구는 8,582 명, 세대수는 5,220 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남산4동 | 16,311 | 6,873 |
성내3동 | 9,716 | 4,382 |
동인동 | 8,582 | 5,220 |
대봉1동 | 7,812 | 3,557 |
대신동 | 7,500 | 3,284 |
남산2동 | 7,302 | 3,347 |
성내2동 | 7,150 | 4,179 |
삼덕동 | 6,741 | 4,221 |
남산3동 | 6,162 | 2,765 |
성내1동 | 4,852 | 3,591 |
대봉2동 | 4,637 | 2,086 |
남산1동 | 4,188 | 2,459 |
대구시 중구 인구(인구수) 그래프
대구시 중구 인구(인구수) 추이
중구 인구는 1970년 14만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 인구가 처음으로 21만명을 돌파했고 이후에 인구가 계속해서 감소했습니다. 2024년 현재 8만 명이 중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대구시 중구 산업 및 교통
사업체는 총 1만 9865개로 7만 8034명이 종사하고 있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도·소매업이 9,153개소(46%), 종사자 2만 1892명으로 비중이 가장 높다. 그리고 숙박 및 음식점업이 2,784개소(14%), 종사자 8,034명, 제조업이 2,174개소(10.9%), 종사자 4,927명, 기타 공공수리 및 개인 서비스업이 1,768개소(8.9%), 종사자 4,258명, 사업서비스업 사업체수 927개소(4.7%), 종사자 7,045명 순으로 나타난다. 상업에 종사하는 업체가 총 사업체의 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고, 그 이후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종사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사자수 5인 이하의 업체를 제외한, 제조업 현황을 살펴보면 총 210개 사업체(9.7%)에 월평균 종사자수는 1,747명이며, 연간 생산액은 1375억 9700만 원이다. 종사자수 5인 이하의 업체를 제외한 사업체수가 중구의 총 제조업 업체수의 9.7% 밖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통해, 중구의 제조업체 대부분이 소규모의 영세 업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업체 중분류별 사업체수와 종사자수를 살펴보면 출판, 인쇄 및 기록매체 복제업이 89개 소(44.3%), 종사자 702명으로 가장 많고, 봉제의복 및 모피제품업이 35개 소(16.1%), 종사자 342명, 가구 및 기타업이 18개소, 종사자 159명 순이다.
상업시설의 경우 일반시장이 18개소, 전문점 3개소, 백화점 3개소, 쇼핑센터 2개소가 13개 행정동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특히 성내 1동이 총 10개소, 38.5%로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고, 전문점 3개소가 모두 성내 1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대신동에 7개의 일반 시장이 집중 분포(26.9%)하고 있다. 이외에 대구시의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 중앙로, 반월당 일대에는 5개의 대형 백화점과 3개의 복합 쇼핑몰, 다양한 상점들과 영화관들이 밀집하고 있어 쇼핑뿐만 아니라 관광 및 위락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은 대신동 일원에 위치한 서문시장이다. 과거 조선시대 전국 3대 장터의 하나로, 조선 중기부터 대구경제의 축이 되어온 곳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물자조달 기능이 발달해 1669년(현종 10) 좌우도로 분리되어 있던 경상도가 통합되어 경상감영이 지금의 중앙공원 자리에 설치되면서 급속하게 발달하였다. 낙동강을 경계로 나뉘어 있던 경상좌우도가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통합되면서 낙동강을 이용한 수로교통과 육로교통이 함께 발달했고 이로 인해 많은 왕래가 이루어지면서 대구의 경제적 위치 또한 크게 부상되어 지금의 대신동 일대로 자리를 옮겨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또한 성내동에는 떡집으로 알려진 염매시장과 약전골목으로 유명한 약령시 그리고 교동시장이 있다. 이 밖에도 중구는 대구광역시의 중심지답게 다른 구와는 도심의 번화가와 재래시장 그리고 특정 상업기능이 집적한 거리를 중심으로 16개의 명물거리가 지정되어 있다.
대구 지역의 금융중심지로 한국은행 대구총국을 비롯하여 25개 시중은행 지점, 27개 지방은행 지점, 14개 특수은행 등 총 66개의 은행과 증권 및 각종 보험회사 등의 금융기관이 집중하고 있다.
교통은 북구와의 경계선을 따라 경부선 철도가 통과하며, 대구광역시 지하철의 1호선과 2호선이 모두 통과하며, 봉산동에는 대구시의 유일한 1·2호선 환승역(반월당역)이 있고 시내버스 노선의 결절지로 대중교통의 요지이다.
대구시 중구 관광
중구는 역사적으로 대구뿐만 아니라 경북 지역의 행정중심지로 역사적 의미를 가진 것 외에도 쇼핑, 위락관광의 중심지이다. 역사관광지로는 대구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달성공원이 있는데, 이는 원래 대구 지역에 위치하였던 옛 부족국가 달구벌의 토성인 ‘달성’일대를 공원화한 것이다. 대구 도심지역에 위치한 도시근린공원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희귀 거수목과 조경수, 넓은 잔디광장(26,446㎡) 그리고 사적지와 동물원이 있어 어린이 교육장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오랜 기간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경상감영의 옛 터인 경상감영공원은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여 도심 직장인들의 휴식처로 이용되며, 주위에 극장들이 몰려있어 상영시간을 기다리거나 쇼핑을 하는 사람들도 즐겨 찾는 휴식공간이다. 잔디밭과 분수 사이로 수목이 우거져 있고, 벤치도 충분히 마련되어 휴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대구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 관광지의 하나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다. 1907년 1월 29일 서상돈이 대구광문사문회의 명칭을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바꾸고 ‘담배를 끊어 국채 1300만 원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였으며, 곧 이어 800만 원의 성금을 내놓았다. 이어 광문사 사장 김광제가 즉각적인 실시를 주장하여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많은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중앙도서관과 동인지하주차장 사이에 4만 2509㎡의 면적으로 조성되었다. 공원 내에는 달구벌 대종, 종각과 이육사·박목월·조지훈·이호우·윤동주의 시비와 대형 영상시설, 이언적·김굉필·서거정·이황·정몽주·서상일·서상돈·이상화의 명언비가 위치하고 있다. 달구벌 대종은 지역민의 화합과 번영을 염원하는 대구시민의 뜻을 온 누리에 전하고자 1998년 12월 22일 건조·설치되었다. 그 외 2·28학생민주의거를 기념하기 위하여 조성된 2·28기념공원이 있다.
중구에는 대구시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특정한 기능이 밀집된 16개소의 ‘명물거리’가 지정되어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거리에서는 문화예술축제가 개최되어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봉산문화거리이다. 봉산동 대구학원에서 봉산육거리에 이르는 이 거리에는 30여 개의 화랑, 25여 개의 표구사 및 골동품점 등이 집적하고 있다. 몇몇 화랑이 입지하고 있던 골목이 문화예술의 거리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대구시민의 문화적 욕구를 수용할 만한 공간으로 이 화랑골목이 선정된 것이다. 현재 봉산문화거리에서는 1년 내내 작품전이 개최되며, 특히 봉산 미술제가 열리는 10월이면 거리는 온통 축제의 열기로 휩싸인다.
그리고 남성동 중앙파출소 맞은편의 과거 약령시 자리에는 한약방과 한의원이 밀집한 약전골목이 있다. 약 700m에 달하는 이 약전골목은 조선시대에 개설된 대구 약령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조선시대 대구 약령시는 약재 수확기인 봄, 가을 한 해에 두 번 씩 열리는데 성시를 이룰 때는 대구 인구보다 약령시 출시자가 많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양약이 보급되고 일제의 탄압정책이 가중되면서 약령시는 점차 쇠퇴하여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근래 한약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약전골목은 옛 명성을 회복하고 있고 최근에는 약령시 회관이 건립되어 새롭게 활기를 띄고 있다. 이 회관은 3층 건물로 1층에는 한약재 도매시장이, 2층에는 약령시 전시관, 3층에는 전통문화공간이 있다. 또 젊은이들의 관광명소로는 야시골목이 유명하다. 이 골목은 삼덕동 고려양봉원에서 갤러리존을 거쳐 금융결제원에 이르는 좁은 골목길에 2, 3평 남짓한 자그마한 옷가게들이 빽빽하게 입지하고 있다. 야시(여우의 대구방언) 같은 아가씨들이 즐겨 찾는 골목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개성있는 다양한 옷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에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로부터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의류 외에도 악세사리, 구두, 화장품, 란제리 코너가 생겨서 종합패션 상가로 변모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비디오방, 호프집, 노래방, 까페 등이 입지하여 쇼핑을 겸한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이 외에도 교동시장 내 전자골목, 동인동 찜갈비골목 그리고 동아쇼핑 뒤편의 떡집골목도 대구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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