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개요
동쪽은 함안군·창원시, 서쪽은 하동군, 남쪽은 고성군·사천시, 북쪽은 산청군·의령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53′∼128°22′, 북위 35°03′∼35°26′에 위치한다. 면적은 712.95㎢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5개 면, 16개 행정동(33개 법정동), 337개 행정리(124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다.
진주시 역사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의 시행으로 진주부가 진주시로 개칭, 시장을 두었다. 또한 종래의 17정 12리가 37동으로 개편되었다. 1973년 7월 1일진양군 정촌면 가좌리·호탄리, 내동면 귀곡리가 진주시로 편입되었다. 1990년 3월 22일 망경남·북동을 망경동으로, 상봉동·서동을 상봉동으로, 수정남·북동을 수정동으로, 옥봉남·북동을 옥봉동으로, 상평동·서동을 상평동으로, 초전남·북동을 초전동으로, 이현남·북동을 이현동으로, 판문남·북동을 판문동으로 통합하였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진양군과 진주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진주시가 되었다. 그리고 3월 1일 문산면이 읍으로 승격, 10월 17일에는 문산읍 동물리를 두산리로, 갈촌리를 갈곡리로, 진성면 중촌리를 동산리로, 이천리를 구천리로, 지수면 승내리를 승산리로 각각 개칭되었다.
진주시 인구
진주시의 총 인구는 342,619명이고 세대수는 159,741세대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진주시 | 342,619 | 159,741 |
진주시 동면읍 인구
진주시에서 충무공동 인구가 가장 많으며 인구는 33,702명, 세대수는 12,600입니다. 두번째로는 가호동 인구가 많고 인구 29,848명, 세대수는 15,395입니다. 세번째는 천전동으로 인구는 27,466, 세대수는 13,780입니다.
행정기관 | 총인구수 | 세대수 |
충무공동 | 33,702 | 12,600 |
가호동 | 29,848 | 15,395 |
천전동 | 27,466 | 13,780 |
평거동 | 26,593 | 11,421 |
초장동 | 26,284 | 9,454 |
하대동 | 23,600 | 11,258 |
판문동 | 20,621 | 8,003 |
금산면 | 20,352 | 7,909 |
상대동 | 18,959 | 10,003 |
상봉동 | 13,312 | 7,235 |
이현동 | 11,309 | 5,168 |
신안동 | 11,224 | 5,313 |
상평동 | 11,164 | 5,484 |
중앙동 | 10,710 | 6,272 |
성북동 | 9,945 | 5,899 |
정촌면 | 8,686 | 4,015 |
문산읍 | 7,845 | 3,612 |
집현면 | 4,485 | 2,147 |
내동면 | 3,987 | 1,655 |
명석면 | 3,880 | 2,163 |
대곡면 | 3,052 | 1,780 |
일반성면 | 2,527 | 1,392 |
수곡면 | 2,189 | 1,260 |
금곡면 | 2,113 | 1,227 |
진성면 | 1,842 | 1,077 |
미천면 | 1,550 | 930 |
이반성면 | 1,536 | 1,000 |
사봉면 | 1,457 | 901 |
지수면 | 1,378 | 824 |
대평면 | 1,003 | 564 |
진주시 인구 그래프
진주시 인구 추이
진주시(진주시+진양군) 인구는 1966년 25만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 처음으로 30만명 이상이 되었고 이후 인구가 크게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2023년 현재 34만명이 진주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진주시 산업 및 교통
용도지역면적은 주거지역 10.85㎢, 상업지역 3.41㎢, 공업지역 3.96㎢이며, 도시계획구역면적에 대한 점유비는 7.0%에 달한다. 시가지내 생산녹지 및 자연녹지를 포함하여 녹지지역으로 구분되는 잔여지역은 240.58㎢로서 대부분이 농경지 및 임야 등 농업활동에 이용되는 토지에 속하며 소위 "개발제한지역"으로 불리기도 한다. 본래 진주시면적은 69.56㎢에 불과하였으나, 1995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전에 진양군에 속했던 배후지의 방대한 농촌지역이 시로 편입됨으로써 시는 도농병진(都農倂進)의 도시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도·농 복합시로 농업의 비중이 여타 도시보다 높은 편이며 비옥한 토질, 알맞은 기후, 앞선 영농기술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설원예를 시작한 농업기술 도시며, 농업 특산품으로는 전국 최고 품질의 진주배와 단감을 비롯해 오이·딸기·고추·수박·피망·파프리카·호박 등 원예작물을 생산하여 일본과 동남아 등지로 대량 수출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162.65㎢이며, 이중 논이 112.37㎢, 밭이 50.28㎢로서 각각의 점유비는 논 69.1%, 밭 30.9%로 되어 논이 밭보다 약 2.3배 가량 우세한 경작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남강 유역의 평야 및 남강댐 하류지역의 관개조건이 양호하기 때문이다. 시의 농가호수는 1만 5899호, 농가인구 5만 4080명으로서 시 인구에 대한 농가인구율은 16.2%에 달하여 도내 시부 총평균 농가인구율 8.8%의 배정도 농민을 수용하고 있으며 행정단위 중 가장 많은 농업종사자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농업생산은 시의 외각지역에서 주곡인 쌀을 위시하여 보리·콩·고구마 등이 경작되며, 부산·서울 등 대도시로의 출하를 목적으로 한 비닐하우스 재배를 통한 전천후 농업이 유명한 데, 특히 각종의 화훼작물과 멜론·딸기·토마토·고추, 그리고 채소류 등의 원예작물, 배·복숭아·밤·단감 등의 과수작물 등이 상업적 기업영농으로 대규모로 행해지며 전국적 명성을 지니고 있다. 이 밖에도 지황·모란·잎당귀·양송이 등이 약용작물로 재배되고 있고, 대도시로의 우유 및 유가공품의 공급을 위한 축산업도 활발한 편이다.
2007년 말 현재 진주시의 총 사업체수는 2만 5535개 업체로 종사자 수는 9만 7483명이다. 1차 산업에서는 광업 5개 업체에 56명, 농업 및 임업 30개 업체에 311명 등이다. 제조업체는 2,384개 업체에 1만 2842명이 종사하고 있다. 서비스업종을 보면 도소매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이 대다수를 이루는데, 각각 8,626업체에 1만 6294명과 5,324업체이 1만 2347명이 종사하고 있다. 건설업에는 803개 업체, 금융보험업에는 334개 업체가 있다.
서비스업부문에서 제조업분야보다 3배 정도의 고용구조를 지니고 있음은 서부 경남지역의 거점도시로서 지니는 중심도시로서의 기능에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서부 경남 상권의 중심이며 교육·문화 도시의 특성으로 인해 1·2차 산업에 비해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지역 여건과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 관광·물류·유통 등 고부가가치 산업과 생명공학·우주 항공 등 연구 중심 도시로 산업 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며, 실크와 농산물 가공 산업을 지역 특화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시장은 대형마트 6개, 백화점 1개, 쇼핑센터 2개와 등록시장 20곳이 있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경전선철도와 남해안고속도로가 동서로, 대전·진주·통영을 연결하는 중부고속도로의 일부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남북으로 연결되어 남으로는 사천시 북으로는 거창, 김천으로 통하여 바다와 육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항공교통도 인근의 사천공항과 인접하여 매우 편리하다. 남해고속국도와 대전∼통영간의 국도 2호, 3호, 33호선이 지나고, 이외에도 국도가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1965년과 1968년에 각각 개통된 진삼선과 경전선을 비롯하여 진주시는 교통망이 방사상으로 발달한 교통 요지다.
진주시 관광
예로부터 예술의 고장이자 지방문화의 총본산인 유서 깊은 곳이다. 수려한 남강을 끼고 임진왜란의 상처를 많이 입은 유적들이 산재하고 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강변 절벽 위의 촉석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의 하나로 고려 공민왕 때 창건하여 600여 년 동안 유지되다가 6·25전쟁 때 불탄 것을 재건하였다.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남강 변의 경치는 절경이다. 전시에는 장군이 지휘하는 장소로, 평소에는 관리들의 놀이터로 쓰였다고 한다. 그 밑의 절벽을 따라 남강에 이르면 2m 크기의 의암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것이 의기 논개가 왜장의 목을 껴안고 투신한 바위이다.
남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김시민을 비롯한 수많은 군졸들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 왜구와 장렬히 전투하였던 승군의 본거지인 호국사가 있다. 시의 남서쪽 약 20㎞ 지점에 남강 상류를 막아 만든 인공호인 진양호는 수정같이 맑은 물과 울창한 주변 산림이 조화를 이루는 절경이고, 특히 일출 광경이 장관이다.
그 밖에 북장대·서장대는 전란 때 장군이 군을 지휘하던 곳이고, 논개의 혼을 모셔놓은 의기사, 진주 유림의 고향인 진주향교, 봉이 날아가 버렸다는 데서 이름지은 비봉산의 경치는 진주의 명물이다. 판문동·귀곡동에 있는 진양호반의 진양호유원지와 가좌동의 석류공원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남성동, 인사동 일대의 골동품거리는 고 미술품 업소의 대부분이 밀집되어 있는 민속품을 포함한 문화재 등의 매매거리로 10여 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민속시장거리이다.
개천예술제는 1949년에 정부수립의 실질적인 자주독립 1주년을 기리고 예술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제1회 영남예술제로 개최되었다. 1959년에 영남예술제에서 개천예술제로 그 명칭을 바꾸었으며 1983년에는 경상남도 종합예술제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진주남강유등축제와 서제, 개제식, 예술문화행사의 7개 부문에 60여 개의 행사가 다양하게 개최된다.
『의암별제』와『진주탈춤한마당』을 주축으로 만든 진주논개제는 매년 5월 넷째주 금,토,일 3일간에 걸쳐 진주성에서 개최되며, 1868년 당시 진주목사 정현석이 창제한 것으로서 제향에 악,가,무가 포함되고 여성들만이 제관이 될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의 제례인 의암별제를 서막으로 진주오광대를 비롯한 민속예술과 진주기생들이 남긴 교방문화와 탈춤과 대동놀이로 구성된다.
남성동에 소재한 국립진주박물관은 1984년에 진주성내에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에는 가야문화를 중심으로 한 박물관 이었으나 1998년에 역사박물관으로 재 개관하였다. 본관 건물은 우리나라 전통목조탑을 석조건물로 형상화한 것으로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대표작이며,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본성동의 향토민속관은 국내 유일의 장석전문전시관으로서 장석 8만여 점과, 목가구 20여점, 생활민속품 17여점, 장석제작도구 등이 진열되어 있다. 칠암동에 위치한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은 다목적 발표공간으로 대공연장, 소공연장, 놀이마당, 전시실, 부대시설 등을 갖춘 이 고장 종합문화예술의 전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남가람문화거리는 이 고장의 전통과 독특한 문화적 개성을 지닌 도심 속의 문화, 휴식 공간으로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범 문화예술거리로 지정 조성되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단계(문화예술의 거리)와 2단계(역사의 거리)로 구분되어 조성되어 있다. 진양교·문화예술회관·진주교·천수교에 이르는 칠암, 망경지구 남강변 일대에 위치한다.
신안동의 진주공설운동장을 비롯하여 문산읍의 문산공설운동장, 옥봉동의 남강실내아이스링크장, 상평동의 진주학생수영장 등은 대표적인 이 고장의 체육시설이다. 이외에도 진성면 상촌리에 진주컨트리클럽이 있으며 망진산 체육공원과 비봉산 체육공원 등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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